몰타에서 생긴 일 part 3
이별을 안다고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잖아요
몰타에는 '엠디나'라는 중세시대 성곽도시가 있다.
수도인 발레타도 성곽도시이지만
수도이다 보니 번잡하고, 군사적인 성격이 강한 반면
(발레타 전투등은 실제로 유명했다)
엠디나는 한적하고 예전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뜨거운 여름 어느 날 엠디나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일본인인 그녀는 나보다 3살 많은 누나였다
그 버스 안에서 동양인은 우리 둘 뿐이었고
어쩌다 보니 나란히 앉게 되었다
그 당시 몰타의 버스는 에어컨이 없었다
30도가 넘는 여름날 버스 안은 최악의 컨디션이었다
매일 햄버거를 먹고사는 듯한 슈퍼비만 아저씨가
우리 앞에 서서 땀을 엄청 흘렸다
그녀와 나는 나란히 앉아서 햄버거 아저씨가 가끼이
오지 않기만을 바랬다
버스가 흔들릴 때면 서로 찡그리며 눈이 마주쳤다
서로 찡그리며 마주치는 모습에 서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엠디나에 도착했다
버스에 내리지 마자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Do you know T, I, M? This is Malta
no aircocditioner, horrible bus driver
if i ask the destination of this bus,
he would say,,, china
그녀는 참 용감했다
이 오지를 혼자서 다니고..
아무튼 입구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헤어졌다
그러나 관광스폿은 한정적이다
관광지에서는 같은 사람을 계속 마주친다
동선이 비슷하고,
결정적으로 같은 가이드북을 보기에
같은 식당에 가게 된다
엠디나 성벽에 있는 식당에서 다시 마주쳤다
table charge가 있었기에 같은 테이블에서 먹고
테이블 비용을 셰어 하자라는 현실적인 제안을 하니
그녀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서로 더듬거리며 영어로 대화했다
언제는 다른 사람을 욕하는 것은 초반 친밀도를 높여준다
우리의 희생양은 아까 그 햄버거 아저씨였다
그리고 서로 여행가 본 곳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알고 보니 우리는 같은 어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그 후로도 우리는 종종 만났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던 그녀는
혼자 플랫에 거주했기에 사람들을 자주 초청했다
우리는 BYOB (bring your own bottle)
각자 먹은 술을 사가지고 그녀의 집으로 갔다
음악도 크게 틀고,
아.. 이런 것이 홈파티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층간소음이 문제인 우리나라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행위였다
그렇게 파티를 통해 우리는 친해졌다
일본 여성들은 한국 남자를 좋아한다
자상하고 세심해서라고 한다.
내가 자상한 편이 아닌데도
그녀는 항상 신세쯔(친절) 하다고 했다
어느 날 그녀는 사전에 계획되어 있던
이탈리아 여행을 홀로 떠났다
그리고 2일째 되는 날 나한테 전화가 왔다
내가 보고 싶다고..
혼자 여행 온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그때 나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아마도 어학연수 와서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데
한 사람만을 만나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나는 이성주의자였다
사랑? 감정? 좋아하는 마음?
그런 거보다는 나의 현실과 내가 할 일이 우선이었다
어렸었지만 삶의 방향성만큼은 확실했다
그녀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후
나에게 솔깃한 제안을 했다
그녀의 플랫은 방이 2개이고,
4개월 비용을 이미 지불한 상태니
빈방으로 이사오라는 것이었다
숙박비를 아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렇게 이성주의자였던 나는 현실적인
대안을 택해 그녀의 집으로 이주했다
그녀의 요리는 terrible이었기에
음식은 거의 내가 했다
나는 냄비로 자포니카 쌀로 만든 밥을 잘했다.
그녀는 내가 뜸 들인 찰진 밥을 좋아했다
고깃값이 저렴했기에 스테이크를 즐겨 먹었다
그때부터 숙박비를 아낀 돈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계획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가 나를 소유하려는 것이었다
다른 친구들과 모임을 하고 늦게 들어오면
나에게 파라사이트라며... 날카롭게 행동했다
여기에서 생각과 입장차이가 발생했다
그녀가 좋긴 했지만
난 자유가 더 필요했다
그녀는 둘이 집에 있는 것을 좋아했지만
나는 여럿이 파티를 가고, 펍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내 친구가 더 생길수록,
그녀와 다투는 날이 많아졌다
다른 사람을 만날 생각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
그저 지금이 아니면 해 볼 수 없는 경험이었기에
다양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었었다
사랑이란 배려이고 이해라고 생각했는데
나 역시 이기적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어느덧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다
언젠가 떠날 것을 알았지만,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이별을 맞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