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헬스장 밖 풍경

혤스 일기 11

by EAST

오늘도 트레드밀을 탄다. 창 밖을 본다. 계절별로 창 밖 풍경은 사뭇 다르다. 겨울, 앙상한 나뭇가지가 강한 바람에 위태롭게 춤을 춘다. 강추위에 오가는 사람들이 드물다. 잔디는 회색빛을 띠고, 하늘 역시 먹구름이 낮게 깔려 있다. 전체적으로 음침하다. 강추위가 창을 뚫고 헬스장으로 곧 쳐들어 올 기세다.


그랬는데,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동장군이 물러가고 훈풍이 불기 시작한다. 노란 산수유, 하얀 목련이 팝콘 터지듯 펑펑 터지고, 잔디밭 연초록 새싹은 땅을 뚫고 솟구친다. 빨강, 하양, 보랏빛 영산홍이 지천으로 널렸고, 벚꽃 흐드러지고, 넝쿨 장미 빨간 립스틱같이 고혹적이다. 아지랑이 하늘하늘 어지럽고, 팔랑팔랑 나비에 취한다. 트레드밀을 타는 듯 마는 듯 정신이 혼미하다. 사방이 온통 신록이다. 싱그러운 계절, 봄이다.


차츰 더워진다. 헬스장 에어컨이 펑펑 숨 가쁘게 돌아간다. 창밖은 폭염경보. 개미새끼 한 마리 없다. 세상이 멈춘 듯 적막하다. 오로지 습기 품은 더운 공기만이 여기저기 찰싹 들러붙는다. 가만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른다. 분수대 물줄기조차 힘없어 보인다. 아직 태양은 하늘 높이 떠 있다.


화무십일홍이라던가. 맹위를 떨치던 여름도 차츰 가을바람에 자리를 내준다. 알록달록 단풍이 곱다. 노란 은행나무, 빨간 단풍나무, 노랑 빨강 두 가지 빛깔 벚나무, 형형색색이다. 햇살도 감미롭다. 유모차를 끌고 온 엄마, 벤치에 앉아 햇살을 맛본다. 노란 은행잎이 팔랑팔랑 떨어진다.


곧 겨울이 오리라. 아침저녁 바람이 점점 쌀쌀해진다. 눈이 오는 날, 나는 역시 트레드밀을 타고 있겠지. 창 밖은 설국. 아이들 깔깔대며 눈사람 만들고, 눈싸움하고, 아버지가 끄는 썰매에 앉아 신나서 크게 웃을 테지.


창 밖 풍경은 시간대마다 또 다르다. 오전 8시경. 총총걸음으로 출근길 재촉하는 회사원들이 보인다. 늦었는지 헐레벌떡 뛰는 모습도 간간이 보인다. 늦지 않길 바란다. 그들이 뜸해지면 개와 함께 산책 나온 사람들이 보인다. 개들은 주인의 취향에 따라 온갖 치장을 하고 나온다.


곧이어 등교하는 초등학생들 무리가 등장한다. 삼삼오오 모여 걷는 녀석들 뭐가 그리 좋은지 얼굴 가득 웃음꽃이다. 개중 누구 하나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우! 몰려간다. 물 빼놓은 분수대. 바닥에 있는 돌멩이를 주워 벽에다 던진다. 한참 거기서 돌팔매질한다. 싱거워졌는지 다시 움직인다. 이번에는 다른 쪽으로 우! 몰려간다. 저러다 어느 천년에 학교 가나 싶다. 엄마 손 잡고 학교 가는 저학년들도 보인다. 학교 가기 싫은 표정이다. 눈에 잠이 가득하다. 질질 끌려가다시피 한다.


한바탕 소동이 끝날 때쯤 유모차에 손주 태운 할아버지가 느릿느릿 나타난다. 걷다가 멈춰, 이쁜 손주 잘 자고 있는지 한 번씩 들여다본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어깨띠를 둘렀다. 관리사무소 직원들이다. 아하! 수요일. 청소하는 날인 모양이다. 손에는 빗자루며 집게 등을 들었다. 우르르 흩어진다. 헬스장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넋 놓고 구경한다. 앗! 1시간을 훌쩍 넘겨 트레드밀 타고 있다. 개이득.

이전 10화평화로운 헬스장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