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은 죄책감 처리장

헬스 일기 16

by EAST

직장 동료와 남한산성 갔다. 나는 휴무, 동료는 야간 근무날. 서로 낮 시간이 비었다. 마음이 맞는 사이라 단풍 구경차 나선 길이다. 굽이굽이 산성 오르는 길은 단풍이 이제 물들기 시작해서 곳곳이 포토존이었다. 남한산성 행궁에는 단풍만큼이나 울긋불긋한 옷차림의 등산객이 넘쳤다. 어머 어머, 예쁘기도 해라, 여기저기 탄성 소리다. 노란 은행나무며, 빨갛다 못해 선홍빛 벚나무 위로 찬란한 가을 햇살이 반짝거렸다. 덩달아 괜히 코가 벌렁거렸다.


찾아간 막국수 집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나마 늦은 점심 시간대라 기다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고소한 들기름 냄새. 중앙아시아 쪽인 듯싶은 여직원이 유창한 한국말로 어서 오세요, 한다. 요즘 심심치 않게 식당에서 그쪽 여자분이 보인다. 처음에는 놀랐지만 이젠 익숙한 풍경. 둘 다 대식가라 곱빼기를 주문한다. 맛보기 수육도 추가한다. 메밀전? 동료가 눈으로 묻는다. 꿀꺽, 침 넘어간다. 눈이 흔들린다. 간신히 참는다. 베이커리 카페 가기로 한 걸 기억해 낸 탓이다. 후루룩. 곱빼기임에도 순식간이다. 채 10분도 되지 않아 계산하고 근처 유명하다는 베이커리 카페로 향한다.


길 좌우편으로 곳곳이 식당이며 카페 천지다. 널찍한 카페 주차장은 이미 차들이 가득 들어찼다. 간신히 자리 하나 났다. 평소 못 보던 빵들이 가득. 금방 배부르게 막국수 먹었음에도 빵은 또 다르지, 쟁반에 욕심껏 담는다. 햇볕 잘 드는 2층으로 올라간다. 2층에도 사람이 가득. 평일이 이 정도면 주말에는 발 디딜 틈이 없겠군, 평일이라 다행이다 싶었다. 둘이 빵 먹으며 실컷 떠들었다. 주변 경치에 취한 다 늙은 남자 둘, 10대 소녀들처럼 수다쟁이가 돼버렸다. 쟁반에 수북이 쌓인 빵을 보며, 감당할 수 있겠냐던 동료도 마지막 남은 빵을 보기 좋게 해치웠다. 경치 구경은 뒷전,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헤어졌다.


그만 잠이 들었나 보다. 현관문 소리에 잠이 깼다. 아내가 퇴근했다. 저녁 7시가 넘었다. 저녁은? 아내가 묻는다. 불룩하게 나온 배를 보여준다. 그럼, 혼자 먹는다. 아내가 주섬주섬 가방에서 봉지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둔다. 고소한 튀김 냄새가 난다. 관심 없는 척 슬쩍 들여다본다. 고추튀김과 군만두다. 군만두라면 사족 못쓰는 나. 슬그머니 식탁에 앉는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내는 젓가락을 이미 두 벌 들고 있다. 남한산성 얘기를 침 튀기며 신나게 떠든다. 단풍구경 같이 가자며 조른다. 고추 튀김이며 군만두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다음 날 오전, 머리를 쥐어뜯으며 헬스장으로 달려간다. 오늘은 트레드밀을 평소보다 오래 해야겠다며 불끈 의지를 불태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의 불룩한 배는 어제 먹은 어마어마한 양의 칼로리를 지방으로 고스란히 축적해 놓은 상태. 의지만 불태워서는 지방을 불태우지 못하리. 죄책감은 조금 사라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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