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을 읽고 (스포주의)

양귀자 소설 <모순>

by 동그리


뒤늦은 <모순> 독후감


1. 사랑에 대하여

사랑은 그 혹은 그녀에게 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으로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이랬으면 좋았을 나'로 스스로를 향상시키는 노력과 함께 사랑은 시작된다. p.218


이 말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어린 시절의 사랑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부끄러운 부분은 숨기거나 생략하는 식으로 나를 보여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그와 있을 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 그래서 그대로의 나도 괜찮구나, 그와 함께 있는 나의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들게 되는 것. 그를 사랑하고, 그로 인해 나도 사랑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2. 모순에 대하여

어쩌면 나는 이모의 넘쳐나는 낭만에의 동경을 은근히 비난하는 쪽을 더 쉽게 생각하는 부류의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어머니보다 이모를 더 사랑하는 이유도 바로 그 낭만성에 있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랑을 시작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미워하게 된다는, 인간이란 존재의 한없는 모순······. p.232


작가가 책 제목을 <모순>으로 정한 까닭이 이 대목에서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누군가를 그 이유로 사랑했다가, 그 이유 때문에 미워하기도 한다는 모순. 인간이라면 누구든 겪어봤을 모순이다. 나는 겪어본 적도 없고 내 주변에 비슷한 사람도 없지만, 왜인지 이모라는 캐릭터가 이해가 되었다. 누가 보면 배부른 소리를 하는, 한심한 걱정뿐인 공주님이지만 스스로가 느끼는 좌절과 고통은 오로지 그 자신만이 느낄 수 있기에 다른 누군가와 비교할 수 없다.


이모는 내린 눈이 사람들 발길에 짓밟히는 모습을 진정으로 보기 힘들어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눈을 확인하는 일이 이모 인생에 닥쳐온 최고의 고통인 것처럼 굴었다. p.234

소설의 제목을 정하면서 많이 망설였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들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모순투성이였다. 이론상의 진실과 마음속 진실은 언제나 한 방향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의 일들이란 모순으로 짜여있으며 그 모순을 이해할 때 조금 더 삶의 본질 가까이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p.306(작가노트)


3. 작가는 왜 이모의 끝을 그렇게 맺어야 했을까?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정신과 육체, 풍요와 빈곤.

얼마 전 부터 나는 이런 식의 서로 상반되는 단어들의 조합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하나의 개념어에 필연적으로 잇따르는 반대어, 거기엔 반드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모순>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었다. p.302(작가노트)

어쩌면 작가는 소설을 쓰기 시작하며, 이란성 쌍둥이라는 캐릭터를 설정하면서부터 이모의 죽음을 계획했는지도 모르겠다. 매일 죽음같은 삶을 끝내 살아가는 어머니. 꽃같은 평화로운 하루를 살다가 스스로 삶을 끝내는 이모. 이 상반된 캐릭터를 통해 모순을 나타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소설이 중반에 이르렀을 때, 나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우리들 모두, 인간이란 이름의 일란성 쌍생아들이 아니었던가 하는 자각. 생김새와 성격은 다르지만, 한 번만 뒤집으면, 얼마든지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일 수 있는 우리. p.303(작가노트)


누군가의 삶이 몇년 뒤 내 삶이 되기도, 남일 같던 일이 내 일이 되기도 하는 삶.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이 한 장 차이라면, 우리들 모두도 결국은 한 장 차이인 것일까. 그렇게 잘 나려 애써봐도, 못났다고 좌절해봐도 결국은 한 장 차이.


새삼스런 강조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4. 나영규를 선택한 까닭?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늘 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이모는 죽음으로 내게 가르쳐주었다. 이모의 가르침대로 하자면 나는 김장우의 손을 잡아야 옳은 것이다.

그러나 역시 이모의 죽음이 나로 하여금 김장우의 손을 놓아버리게 만들기도 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보였던 이모의 삶이 스스로에겐 한없는 불행이었다면,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에게 불행하게 비쳤던 어머니의 삶이 이모에게는 행복이었다면, 남은 것은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뿐이었다.

나는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전에도 없었고, 김장우와 결혼하면 앞으로도 없을 것이 분명한 그것, 그것을 나는 나영규에게서 구하기로 결심했다.


안진진은 결국 이모처럼 지겹도록 무덤 속 같은 평온일 지 몰라도, 내가 겪어보지 않은 길을 선택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책을 읽으며 김장우와 나영규를 고민하는 안진진에게 '뭘 고민해. 당연히 나영규지!' 하고 외쳤지만, 그건 책 속의 주인공을 바라보는 독자 입장이고... 정작 내가 안진진이었다면 내 마음이 가는대로 김장우를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나의 어린 시절 경험이 영향을 준 것이겠지만, 안진진의 선택이 반가웠다. '그래 똑똑하게 잘 선택했어 안진진! ' 그치만 이후 안진진의 삶이 어땠을지는 모르겠다.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보였던 삶이 스스로에겐 한없는 불행, 모든 사람에게 불행하게 비쳤던 어머니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행복이라는 모순. 화려해보이는 유명인들의 극단적 선택을 보면서, 혹은 그 속에 가려졌던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마주하며 이 모순을 더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 같다.


인생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것. 좋은 일이 있다고 너무 좋아할 필요도, 나쁜 일이 있다고 너무 좌절할 필요도 없다. 인생은 그저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 실수를 되풀이하며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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