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남은 소리

내 안에서만 끝없이 울리는 삐—

by 혜삐
귀에 남은 소리

폭력은 언제나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었다.
그날도 별다른 예외는 없었다.


중학교 2학년 어느 여름날, 아빠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김치 택배가 경비실에 와 있다. 당장 가져와라.”
나는 “네” 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깜빡 잊고는 그날 몇 시간 동안 김치를 찾아오지 못했다.


아빠가 집에 돌아온 건 몇 시간 후였다.
그의 손에는 무거운 김치 박스가 들려 있었다.
경비실에서 들고 올라오는 동안 얼마나 화가 치밀었는지, 그의 얼굴은 이미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이런 것도 하나 제대로 못 해? 개 같은 년아.”


거친 욕설이 쏟아지더니, 갑자기 김치 박스가 내 쪽으로 날아왔다.

순간 거실은 김치 국물로 범벅이 되었고, 벽지와 바닥에 붉은 얼룩이 번졌다.


나는 두 손을 모으고 빌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그게 아빠의 화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손찌검이 이어졌고, 뺨을 맞는 순간 귀 안에서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세상이 이상해졌다.


삐————.


왼쪽 귀에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헉, 뭔가 잘못되었다. 혹시 이대로 영영 못 듣게 되는 건 아닐까?’
공포가 온몸을 덮쳤다.


아빠는 그냥 방으로 들어가 잠들어 버렸다.
조금 뒤 집에 들어온 엄마와 동생은 얼룩진 거실과 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울면서 말했다.
“귀가 잘 안 들려요. 계속 삐 소리가 나요.”


엄마는 곧장 택시를 불렀다.
동생과 나, 그리고 엄마 셋이서 응급실로 달려갔다.
의사는 귀를 살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고막이 파열된 것 같습니다. 대학병원으로 옮기셔야 합니다.”


다시 택시를 타고 큰 병원으로 갔다.
정밀 검사를 마친 뒤, 의사가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엄마는 처음엔 솔직히 말했다.
“…아빠한테 맞아서요.”


순간, 의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렇다면 이건 폭행으로 인한 상해입니다. 형사 사건이 될 수 있고, 보험 처리는 어렵습니다. 치료비는 직접 내셔야 합니다.”


치료비를 직접 내야 한다는 말에, 엄마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바꿨다.
“…아이가 넘어지다가 그렇게 됐어요.”


의사도 이미 상황을 눈치챈 듯,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험 처리를 위해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낫겠습니다.”


그 순간, 나는 또다시 깨달았다.
내 고통은 은폐될 수 있다는 것.
내 몸에 난 상처조차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다른 이야기로 포장되어야만 하는 현실.


그날 이후로 내 왼쪽 귀에는 늘 미묘한 소음이 남았다.
그 삐— 소리는 단순한 이명이 아니었다.
그건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잔향이었고,
내 어린 시절의 폭력이 남긴 가장 선명한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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