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주말에 일정을 맞추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그동안 각자 수집한 정보를 공유하고 분석하며 대응책을 논의했다. 여의도 인근 한강변의 공터나 규모가 제법 되는 공원이 그 주요 집결지였다. 이벤트가 시작된 것이 10윌 말경이었다. 이른 아침이나 해가 떨어진 오후 시간이면 벌써 가을을 지나 겨울이 성큼 다가온 것을 느꼈다. 공기가 제법 차고 바람도 매웠다.
이번엔 제법 규모가 큰 공원 주차장 인근 공간에 모였다. 지근거리엔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한 남정네가 눈에 들어왔다. 겨울용 등산복 차림에 면도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인지 수염이 불규칙하고 덥수룩했다. 70년대 말까지 유행하던 장발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마구 휘날렸다. 을씨년스러운 늦가을 날씨와 아주 구색이 잘 맞는 구도였다. 땅바닥을 딛고선 두발 앞 쪽에 아무렇게나 널린 돗자리 위에 놓인 아주 철지난 디자인 도시락은 뚜껑과 몸체가 둘로 나뉘었다. 그 수납공간엔 거칠게 가시를 발라낸 중간 크기의 굴비 살덩어리 예닐곱 개 가 잡초 대형으로 흩어져 있었다.
이 남정네는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돗자리 위에 앉기는커녕 스탠딩 자세로 서성였다.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을 옆 사람이 간신히 들릴만한 혼잣말 톤으로 계속 반복적으로 암송을 했다. 중간중간 소주잔을 들이켜고 굴비 살덩어리를 쩝쩝거리며 맛있게 흡입했다 주위 사람의 눈치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번에 희망퇴직을 하게 되면 나도 곧 소득 절벽이 올터이고 재취업은 언감생심 백수건달이 될 것이 뻔했다. 바로 눈앞의 저 남정네처럼 출근할 곳이 없다 보니 이런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스산한 분위기에서 저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1개월 후의 내 모습이 그대로 겹쳤다. 순간 나는 머리를 좌우로 세차게 털어대고 몸서리까지 쳤다.
드라마나 영화도 흔히 그러하듯이 왜 하필이면 이런 상황에선 궂은비가 배경이 될까. 한강변 인적이 드문 곳에 주차된 차량 안이었다. 동료 3명이 모였다. 이른바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하듯이 자못 분위기가 진지했다. 차창에 부딪혀 흘러내리는 빗물 덩이는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애수 쪽에 더욱 가까웠다.
직원들은 회사 측이 쥐고 있는 패를 완벽하게 읽을 수 없었다. 그에 대한 대응 방법으로 뾰족한 수가 나올 수 없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국가 대표급 프로 기사들은 몇 수 앞을 훤히 내다보거나 이른바 타짜들은 상대방이 가진 패를 깡그리 읽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필부필부에 불과한 일행은 별다른 묘수가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면, 그만두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그만두면 조만간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있까, 희망퇴직을 끝내 거부할 경우엔 어떤 종류의 보복 조치가 뒤따를까, 궁극적으로는 상상하기도
무시무시하고 살이 떨리는 정리해고까지 각오해야 하는가. 만약 그렇게 되면 특별퇴직금마저 날려버리고 삐약이들 학업은 어쩌고, 전 가족이 결국은 길거리에 나 앉는 게 아닌가. 어떤 것이 정답이고 가장 최선의 선택지 인지는 오리무중이었다. 참으로 딱한 신세가 되었다.
입사 선배인 송 부장은 방금 전 본사 본부장을 만나고 오는 길이라며 고맙게도 내게 별도로 연락을 했다. 나름 의미 있는 메시지를 주었다.
“이번 희망퇴직을 거부하는 직원은 열외 한 명 없이 정리해고를 하겠다는 것이 회사 측의 확고한 방침이다. 종래와 달리 이번엔 노무사의 자문까지 받아가며 단계별로 대응하고 있다.”
본부장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일단 별로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박 점장, 그럼에도 내가 판단하기엔 그만두지 않고 버티는 게 맞는 것 같네. “
자신의 진단 결과를 솔직하게 귓속말 모드로 살짝 전해 주었다. 고마울뿐더러 용기까지 생겨났다.
주특기가 일선 영업이 아니라 최근까지 본부 부서에 근무한 적이 있는 채부장을 비롯하여 다섯 명이 정육식당의 원탁형 화덕에 둘러앉았다. 채부장은 이제 겨우 43세에 턱걸이했다. 절대 고령이 아님에도 최근 소속 부서장의 맘에 들지 않아 살생부에 추가로 이름이 올랐다. 이 사연을 듣는 순간 나는 20대 초반 청년처럼 피가 거꾸로 치솟았다. 정말 악랄한 조직의 무모한 행태의 종착지는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자조적인 말을 여러 번 되뇌었다. 일행 다섯 명 모두는 각자의 소주잔을 한데 모아 부딪는 소리를 들으며 향후 끝까지 버틸 것을 다짐하는 구호로 건배사를 갈음했다.
화덕 모임 다음 날이었다. 전날 비분강개하며 평소보다 많은 양의 술을 마신 덕분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인천 변두리에서 서울 영등포로 출근을 하는 나는 평소보다 좀 이른 시각에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짙은 안갯속을 뚫고 미끄러지며 들어오는 승용차 한 대를 발견했다. 초등생 딸의 등교 편의를 돕기 위해 아빠가 오늘도 버스정류까지 같이 데려다주는 장면이 오늘따라 유독 달리 보였다. 내가 만약 당장 회사를 그만 둘 경우 우리 삐약이들에겐 아빠로서 저런 도움도 향후 전혀 줄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 미쳤다. 참으로 본인 처지가 한심하고 부끄러울 뿐이었다.
희망퇴직 2차 신청기한의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회사의 본부가 있는 여의도로 한걸음에 내달리고 싶었다. 하늘을 멋지게 찌르고 위용을 자랑하는 빌딩 사옥에다 화염병과 함께 사직서를 묶어 함께 던져버리고 싶었다. 전쟁터에서 패장이 그러하듯이 장렬한 전사로 모든 생활의 최후를 맞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극단적인 그림까지 그려 보았다.
그나마 둘째 삐약이 보다 5살 위인 큰 아들은 아빠 회사와 집안 분위기를 어느 정도 알아차렸다.
"아빠, 이번에 회사에서 자르려고 하는 것 아니에요?"
라는 돌발적인 질문을 했다. 하늘이 노랗게 변하고 나는 숨도 탁탁 막히며 잠시 울컥 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