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첫 변곡점(4편)

고입 재수 시대

by 그루터기


삽짝 문을 들어서 추락하듯이 내려온 마당과

같은 높이의 좌측 편에 재래식 화장실이자리

했다.초등시절 공작 시간에 재료로 준비하던

찰흙(도대흙)과 동일한 등급의 아까운 재질의

흙으로된 너른 공간이었다. 시커먼 19 구공

탄을 줄을 맞추어 야지리 차곡차곡 쌓았어도

공간은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화장실보다는

연탄창고로 부르는 것이 더 맞았다.


본채에는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가장과 부인, 그리고 주영, 재영 두 아들과 같이 기거했다. 초등생인 두 아들이 너무나 깡말라 외계인으로 오인해도 큰 잘못이 없었다. 그 집 안주인과 누나는 자주 교류가 있었지만 나는 그 이상은 범위 밖이었다.


내게는 일종의 암흑기였던 중학 시절이었다. 3년간 모두 합하여도 신장이 10 센티미터도 자라지 못했다. 졸업 시에도 150 센티에 좀 모자랐다. 선화동 시절이었다. 시골에서 챙긴 흰 광목 포대에 담은 보리쌀 한 말을 둘러매고 옥천에 도착했다. 이어 대전과 옥천을 왕복하는 삼선교(여보 다리)가 종점인 18번 시내버스를 갈아탔다. 그 이후 걸어서 자취방으로 복귀하게 되는데 중간중간 여러 번을 쉬어야 했다. 키가 작은 내게 부담이 되는 중량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용물이 이리저리 쏠리는 부정형의 짐 때문에 더욱 힘이 들었다. 한 말 짜리 용량의 딱딱한 휜색의 막걸리 통을 가득 채울 때보다 공간에 여유가 있을 땐 내용물이 출렁거려 운반에 더 어려움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내가 좋아하는 항상 믿음직한 정통파 복서 유제두가 세계 챔피언이 된 후 타이틀을 넘겨준 선수와의 리턴매치에서 안타깝게도 패배한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세계타이틀전의 경우엔 챔피언이 타이틀을 잃을 경우 정해진 일정한 기한 내에 다시 경기를 갖는 옵션의 이면계약을 하는 것이 대세였다. 정석이나 정통 전술을 구사하는 우리 선수와 달리 변칙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일본의 와지마 고이지의 이른바 ‘개구리 전법’의 대결이었다. 우리 선수가 마치 수면제에 약간 취한 사람처럼 힘도 써보지 못하고 무너지던 모습을 지켜보던 10 대 중반의 나는 감당하기 어려운 허탈감을 느꼈다.


체력이나 기량면에서 훨씬 앞서는 것으로 보이는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의 대표 복서가 야바위꾼을 연상시키는 변칙 대장 일본 선수에게 세계타이틀을 내주는 안타까움이 결코 작지 않았다. TV가 없었던 우리는 본채 주영이네 흑백 TV로 중계방송을 지켜보았다.


우리 삼 남매의 보물 덩어리인 트랜지스터 라디오 덕분이었다. 대전 MBC 방송 전파를 통해 ‘엑소시스트(무당)’라는 영화의 공격적인 홍보를 전해 들었다. 막내를 데리고 우리 자취방에 오랜만에 오신 어머니를 졸라 개봉관에 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았다.


"임산부는 사절, 노약자는 앰뷸런스 대기후 관람하세요"등 당시로선 파격적인 카피였다. 영어 공부에 아직 입문하지 않은 막내는‘엑소시스탕 무당"이라 하여 원어민 수준의 발음을 자랑했다. 우리 삼 형제가 대전에서 손꼽는 개봉관에서 영화를 즐감했다. 666 이란 저주의 숫자를 두피에 새겨진 채 태어난 아이의 성장과정을 그렸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 미신 또는 신의 영역이 있다는 것이 줄거리의 골자였다.


그럴듯한 작은 용기에 맹물에 불과한 수돗물을 채워선 성수라고 속여 전후좌우로 흔들며 주문을 외쳐대니 주인공 아이가 복장을 제대로 갖춘 성직자 행세를 하는 배우의 의도대로 움직이곤 했다. 홍보를 이미 듣고 모여든 관객들이 초기부터 어떤 장면이 일어날까 숨죽이며 기다리던 중 침대는 물론 방안의 다른 가구, 나아가 건물 전체가 마구 흔들리는 한바탕 광풍이 지나자 긴장과 안도의 한숨을 한결같이 거칠게 내쉬었다.


9월 초부터 학원에선 대전 시내 유수의 명문 중교 현직 교사들을 파격적인 대우로 스카우트했다. 야간에 음악 미술 등 수업을 집중적으로 진행했다. 자신의 아들이 대전중학교를 졸업하고 경기고교에 합격했다는 자랑을 늘어놓은 현직 교사도 음악을 가르쳤다. 대전 중학교에서 최정예인 5명 안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는 건데 정말로 엘리트코스에 진입하는 게 장난이 아니란 것을 어린 나도 일찍이 깨달았다.


실제 미술과목 출제자였던 선생님도 전개도를 보고 완성될 모형을 찾아내는 문제에서 수험생이 문구용 칼을 활용하여 전개도의 모양을 오려내어 실제로 시물레이션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것이 부정행위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시험 출제 본부로 물어옴에 그것도 능력이니 무방하다는 답변을 했다는 일화에 나는 자극을 받았다. 항상 부단히 노력하고 무엇인가 꾸준히 시도를 해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일 늦은 9시 10분 전후로 일단 정규 수업이 마감이 되었다. 열정이 대단했던 영어 선생님은 무료로 한 시간 정도 특강을 마련했다. 프린트물의 부교재도 배포하고 진행을 했다. 문장의 5 형식이 주된 테마였다. 나는 너무 늦은 시각이기도 하고 무어 특별한 것 있겠어라는 생각에 이에 불참했다. 왜 문장의 5 형식을 분석하는 트레이닝을 했는지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이 특강을 들었으면 고교 진학 후에도 많이 도움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초등시절 국어 공부할 적에 전과에 나오는 것을 그대로 베끼곤 하였던 문단 나누기의 필요성을 아주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서나 깨달은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실제 영어시험에 발음부호, 악센트, 스펠링 등에 관한 문제가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단골로 주의할 단어 여럿을 언급하던 중 기계(mashine)란 놈은 정말 세 가지 부문에 모두 해당되어 ‘멋있(머쉬인)‘는 단어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틀린 문장을 고르는 문제 중 Home 앞에 to가 있는 선지가 정답이었다. Home은 명사이지만 부사로도 쓰이기 때문에 앞에 to라는 전치사를 중복하여 쓸 수 없다는 것도 반복해서 새겨들었다.


우리 모교 중학교 설립자가 그랬듯이 원장도 역시 담당 선생님의 사전 양해도 전혀 없이 수업 중인 교실로 무단 침입했다. 본인의 이야기를 한참 이어가다 눈을 감아라, 어머님의 은혜 노래의 제창을 유도한 후, ’ 내 몸은 내 몸이면서 내 몸이 아니다’를 모토도 낭독하고 스포츠 경기에서 리베로 같은 행동을 수시로 했다. 원장이 진행하는 수순은 반공 도덕 과목의 단골 문제였던 국민의례 순서와 같았음은 우연의 일치였다. 학교는 물론 특히 수업 중인 교실엔 가르치는 사림의 승낙이 없이는 설립자나 원장이 아니라 일국의 최고 통치권자도 절대로 출입할 수 없는 성역라고 충분히 배운 바 있었다. 심지어 본인을 원장 아버지라고 불러달라고 까지 했다. 마치 저쪽에 있던 ●●●위원장이 연상되기도 했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원장 당신의 자식이 모두 육손이라는 기형아였기에 너희들은 내 아들들이라는 논리를 폈다. 약간은 울적했고 코 끝이 찡하기도 했다. 원장 친인척 중 한 람이 주택복권 아차상에 당첨되었다. 내 주위에도 이런 드문 일어났다.


강도가 상당히 높은 체력장 훈련 중 나는 몇 번 대오를 이탈하여 땡땡이를 친척이 있었다. 그래서 담임에게 종아리를 맞은 적이 있었다. 담임은 너희들을 결코 감정을 가지고 체벌을 하지는 않는다고 강변했다. 인간은 이성, 감성 중 어느 하나만의 동물도 아니지 않은가 하는 나름 심오한 생각도 하는 계기였다.


땡땡이 시간에 가끔 그네 놀이하던 대전 시내 중소형 실개천에 설치되어 있던 나무 재질의 흔들 다리는 제법 운치가 있었다. 졸업 즈음 전 학생 대상의 설문조사에서 우리 담임과 대척점 정도에서 가장 인기 없는 워스트 선생으로 뽑힌 똥개라는 별칭을 얻은 사람은 생물 선생이었다. 각 교실마다 찾아다니며 분인이 영광스럽게도(?) 그 자리에 서게 되었지만 나름 한 마디 했다. "성실해라" 너무 평범하고 흔하지만 좋은 말이다. 자신의 지인은 또 다른 지인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誠實’이라 적힌 액자를 지금까지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는 일화도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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