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설립자와 기나긴 악연(3편)

by 그루터기


나의 초등시절 남자 어린이의 헤어스타일은 크게 상고머리와 삭발의 두 가지로 나뉘었다. 초등 3학년 기준으로 이발 비용은 전자와 후자 각각 20원과 10원이었다. 삭발은 소위 ‘바리깡’으로 단번에 밀어 버려 손쉽게 공정이 완료되었다. 이에 반해 상고머리는 남긴 앞머리 등을 곱게 가지런히 빗어 가위로 단정하게 줄을 맞추어 자르는 공정이 추가로 필요했다. 이러다 보니 이 수고에 대한 추가의 대가가 반영된 것이었다.


삭발 대 상고머리의 비율은 대략 7:3 내지 8:2 정도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선 상고머리 남자 어린이도 삭발로 전환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중고등생의 교복과 삭발 제도는 일제 제국주의 내지 군사문화의 잔재로 보기도 했다.


관내엔 2개의 이발소가 이름을 걸고 영업을 하던 시절이었다. 아버지가 그렇게도 고집하던 각골 이발소에 더하여 삼거리 한쪽에 자리 잡은 남매 이발소가 그것이었다. 나의 고향 동기 절친 길주와 철호는 이제 대망의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선 두발을 단정히 할 생각으로 이곳에 들어섰다. 당시 관내 인구는 최대 7,000 명선을 넘어섰다. 적지 않은 사람이 이발소를 찾았다. 게다가 예비 중학생이 한꺼번에 몰렸다. 구정을 앞둔 명절 특수가 겹쳤다. 이발소 안은 송곳을 제대로 꽂을 틈조차 없을 정도로 붐볐다.


이에 이마 부분이 정수리를 제법 잠식한 헤어 스타일이나 일찍 찾아온 백발 덕분에 상당한 어르신으로 보이는 설립자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번호표를 배포하지 않더라도 관록이 묻어나는 이발사는 누가 이곳에 먼저 도착했는지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 도착 순서에 따라 부지런히 작업을 이어갔다. 너무나 분주하다 보니 식사도 건너뛰었다.


이러던 중 설립자는 자신의 개인 일정이 바쁘다는 이유로 자신의 바로 앞 순번으로 대기 중이던 길주와 철호에게 저간의 사정을 꺼냈다. 자신에게 순번을 양보해달라고 종용을 했다. 나의 동기 두 명의 예비 중학생은 이제껏 오랜 시간 자신들의 차례가 돌아오길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중이었다. 머리를 좌우로 똑같이 흔들어대며 거절의 뜻을 완곡하게 전했다.


이 설립자의 신분을 미리 알아챌 도리가 없는 10대 초반 예비 중학생들로선 어쩌면 당연한 결정이었다.

"애들아 내가 누 군인 지나 알고 그러느냐, 너희들이 조만간 입학하기로 되어 있는 중학교의 설립자란 말이다. 겨우 이 정도의 양보도 할 수 없느냐?"는 생각이 마음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결국 설립자의 이발 기회 순번 양보에 관한 종용은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설립자는 우리 동기들이 드디어 중학교에 입학을 한 후 자신의 신분을 자랑스럽게 드러냈다. 당시 해프닝의 주인공이었던 길주와 철호는 적지 않게 놀랐다. 도덕이나 국어 수업 중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 건을 반복하여 꺼내 들었다. 두 친구는 두고두고 난처한 입장이었고 곤혹스러워했다. 사건 당시 현장에서 자신의 신분을 내보이며 양보를 종용했더라면 그 결론은 달라졌을가를 가정해보는 건 당시나 지금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되었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너무 자주 지속적으로 이 건을 꺼내다 보니 어린 중학생의 마음고생은 가볍지 않았다, 아무리 설립자라도 완곡한 부탁이라면 모르지만 설립자란 직위를 이용하여 양보를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요구할 수 있는 합당한 근거는 전혀 없었다.


중학교 입학식을 하기 얼마 전 예비소집이었다. 당시 중학교의 본관 좌측면은 이렇다 할만한 경계 역할을 할 담이나 울타리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땅콩 농사의 흔적을 그나마 갖춘 땅콩밭의 가장자리 선을 기준으로 경계를 가늠해야 했다. 정면 맞은편엔 다른 곳에서 이미 많이 자란 측백나무를 열댓 그루 이곳으로 옮겨 심어 그나마 울타리 역할을 하는 체면치레를 했다.


오른쪽면으로 눈을 돌리면 높이 오육십 센티 내외로 흙을 끌어 모아 우선 임시로 경계표시를 했다. 흙무덤인지 흙담인지의 구분이 쉽지 않았다. 본관 후면은 이보다 훨씬 열약한 모습이었다. 이러다 보니 제대로 된 울타리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절박했다.


이에 임시 소집일로부터 약 2개월이 지날 즈음 설립자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냈다. 법정공휴일인 식목일 쉬는 날을 활용하여 10대 초반의 어린 중학생에게 긴급 재정 경제 명령권(?)을 발동했다. 학교 측으로선 전혀 비용이나 노무를 부담하지 않고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손대지 않고 고풀기’ 격인 기가 막힌 방침을 하달했다.


매년 4월 5일이란 식목일로 이름을 짓고 강수량 기온 온도와 습도 등 제반 기상 조건을 감안할 때 묘목 등을 구해다 새로이 나무를 옮겨심기에 아주 적절한 시즌으로 정한 것이었다. 이른바 범국민적인 나무 심기 행사일이었다. 학생들에게 지령을 내려 본인이 접근하기 펀한 인근 야산에 올라 학교 교사 울타리용 나무로 쓸 노간주나무 3주씩 캐어 등교라는 좀 납득이 되지 않는 지령을 내렸다.


식목일이란 자고로 나무를 심는 날로 배운 터였다. 각자 자신의 영원한 삶의 터전으로 이미 자리를 잘 잡아 자라고 있는 나무를 캐어오리니, 이는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통상인의 입장에서 볼 때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황당하기까지 했다. 어차피 나무를 한 곳에 옮겨 심자면 다른 한 곳에선 캐어내어야 함이 어쩌면 당연한 이치였다. 이는 어린 묘목을 이제 장차 영원한 정착지가 될 것으로 예정된 곳에 옮겨 심는 경우에만 타당한 이야기이다. 묘목이 아닌 일정한 곳을 이미 자신의 지속적인 터전으로 생각하여 자리 잡고 있는 나무를 캐어내 정착지만을 다른 곳으로 단순히 옮긴기는 것은 결코 식목일 본연의 취지에 맞지 않았다. 10대 초반의 어린 중학생들의 눈에 비추어도 별로 아름다운 행사가 아니었다. 비록 비용이 들더라도 울타리용으로 맞는 묘목을 구입하여 그 용도에 적합한 곳에 옮겨 심는 것이 정도였다. 식목일이 나무를 심는 날이 이 닌 오히려 캐러 가는 날이 되었으니 이는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흔치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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