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신발장을 열면 많은 신발들이 꽉 차 있다. 구두, 운동화, 등산화, 롱부츠까지.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한때는 모두 내가 되어 나와 함께 길을 걸었던 존재들이다.
외출할 때면 늘 잠시 망설인다. 오늘은 무엇을 신을까. 옷차림에 맞춰 예쁜 구두를 꺼내 신어 보지만, 발끝에서부터 어색함이 올라온다. 마치 내 신발이 아닌 듯하다. 결국 구두는 다시 신발장 속으로 들어가고, 내 발아래에는 편안한 운동화가 놓인다. 몸은 솔직해서, 이미 답을 알고 있다.
한때는 멋쟁이였던 구두들이 아깝다. 쓸 만한 것들은 나눔을 생각하다가도 귀찮음에 밀려 분리수거함으로 향한다.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샀던 신발들은 이제 나와 무관한 존재가 되었다. 발은 그동안 주인을 잘못 만난 탓일까. 무지외반증이 찾아온 뒤로, 구두와는 작별을 고했다. 추운 겨울에도 롱부츠의 힐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
그림 속에서나 어울릴 법한 예쁜 구두들은 이제 바라보는 대상일 뿐이다. 낮은 신발이 내게는 가장 편하다. 수술하면 끝난다는 말도 있지만, 나는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뼈를 깎는 아픔’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며 엄포를 놓는 통에, 병원 문턱조차 밟지 못한다.
아가씨 때는 힐을 많이 신었다. 내 발은 내가 제대로 돌보지 못해 이 모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제는 안다. 발이 편해야 몸도 덜 피곤하다는 것을.
신발장에 남아 있던 신발들은 추억이었고, 그 추억들은 어느새 모두 떠나고 없다. 지금의 나에게 맞는 새로운 신발만이 조용히 나를 기다린다. 세월이 흐르며 삶이 변한 것처럼, 신발도 옷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무엇을 가지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듯, 맞지 않는 신발을 억지로 신지 않는 일. 지금의 나에게 맞는 속도로, 맞는 모양으로 사는 것 역시 인생의 한 부분임을, 나는 신발장 앞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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