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산실에 시계를 하나 달기 위해 관리소를 찾았다. 사실 단순한 일이었다. 행정실에서 벽걸이 시계를 하나 받아왔고, 전산실 벽에 걸고 싶었지만 벽이 시멘트라 직접 못을 박을 수 없었다. 그래서 관리소에 가서 도움을 요청한 것뿐이다. 하지만 이 간단한 과정에서 나는 조금은 불편한 감정을 느껴야 했다.
관리소장은 내 요청을 듣더니, 다소 냉소적인 태도로 "거기다가 시계를 왜 달아요?"라고 물었다. 순간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나는 "시간 보려고 시계를 단다"고 답했고, 이후에도 내가 관리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관리소장은 계속해서 시계가 필요하냐는 식으로 물었고, 결국 시설주무관이 "못 박아달라니 박아줘야죠"라며 마무리했다. 대화는 끝났지만, 내 마음속엔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처음엔 기분이 나빴다. 왜 내가 단순한 도움을 요청하는데 이런 식으로 비아냥거리는 태도를 받아야 하는 걸까? 그들의 반응이 무례하다고 느껴졌고, 내 일을 방해받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상황을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법륜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행복을 구걸하지 말라. 남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내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면, 내 인생의 칼자루는 상대방이 쥐고 있는 것이다." 관리소장의 말과 태도 때문에 내가 불쾌함을 느낀다면, 결국 내 감정의 주도권을 그에게 넘겨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내가 옳다고 믿는 행동을 했고,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든 그건 그의 문제일 뿐이다.
또한 비폭력대화(NVC)의 한 구절도 떠올랐다. "상대방이 하는 폭력적인 말은 사실 그가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충족되지 않은 자신의 욕구를 비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관리소장의 냉소적인 태도 역시, 어쩌면 그가 살아온 환경과 경험 속에서 형성된 하나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태도를 무례하다고 단정 짓기보다는, 그가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그는 평생 누군가가 자신의 의견을 물어주지 않는 환경에서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무언가를 요청할 때마다 그것을 불필요하거나 번거로운 일로 받아들이는 습관이 들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샤워를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말을 예쁘게 하지 못하는 사람은 불쌍하다.' 모든 사람은 존중받고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상대방을 존중하는 언어를 배우지 못한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도 존중받기 어려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말투가 무례하고 냉소적일수록, 그는 살아오면서 사랑받고 존중받았던 경험이 적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사람을 보며 기분 나빠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
이건 내가 상대방을 무조건 용서하거나 그 태도를 정당화한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그 사람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고, 살아왔다는 걸 이해한다는 의미다. 무례한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똑같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도 저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면 내 감정이 훨씬 자유로워진다. 상대방의 무례함이 내 마음을 지배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오늘 있었던 작은 일이지만, 나에게는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무례하게 대할 때, 나는 그 순간의 감정에 휘둘릴 수도 있고, 아니면 한 발 물러서서 더 넓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후자를 선택하고 싶다.
앞으로도 이런 순간들은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받아들이고 싶다. 상대방이 내게 어떤 태도로 나오든, 나는 나 자신을 잃지 않고 평온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는 말과 태도를 선택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