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30년만의 폭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
3월 중순, 따뜻한 봄이 올거라 기대했던 마음을 씻어내는 눈이 왔다.
어쩌면, 그냥 물러나기 싫어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겨울의 모습 같기도 하다.
이렇게 눈이 오면, 문득 제주 올레길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2021년 새해 목표로 나는 올레길 완주를 목표로 했다. 살이 많이 찐 상태이기도 했고, 새해에 무엇인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제주행 비행기를 예매를 하고 떠났다.
제주도는 따뜻하다는 생각과 걸으면 더워진다는 생각이 겹쳐, 조금은 얇은 옷을 챙겨서 갔다. 그리고 걷는 시간 이외에는 할 것이 없기에 성경책을 1권 챙겨 갔다. 성격책 역시 그 해 목표이기도 했다.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믿고 따르고 있는 헤브라이즘에 대한 지적 호기심에 남는는 시간에 성경을 읽겠다 마음을 먹고 도보 여행을 시작했다. (위레기를 읽다 더 이상 읽지 못했다)
17코스부터 시작했던 올레길 투어는 강한 바람을 맞으며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유래 없는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앞을 볼 수 없게 많이 내린 눈, 걷는 내내 얇게 입고 온 옷, 금새 젖어버리는 신발, 당장이라도 걷기를 포기하고 싶었다.
그래도 길을 가던 중 만났던 사람들과 함께 걸으니 조금은 힘이 되면서 그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밤새 왔던 눈으로 인해, 걸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이 되었지만, 새해에 세운 목표였기에 이어서 계속 걸었다.
걷는 순간에는 하필이면 내가 제주도에 왔을 때 눈이 온다며 불평 불만이 가득했고, 계속해서 내가 왜 이 고생을 돈주고 하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그러다 걸으면 걸을 수록 달라지는 제주도 풍광에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날 제주도는 30년만의 폭설이라고 했다. 그로 인해 도로는 마비가 되고, 저녁 뉴스에는 도로 통제관련 뉴스 사고 뉴스 등이 나오기 시작했다. 경기 북부에서 살아 오던 나에겐 그렇게 많은 눈은 아니였으나, 평소 눈이 많이 오지 않는 제주도에서는 이 정도의 눈이 30년만의 폭설이라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면서 조금은 의아하기도 했다.
그런 뉴스를 듣다 보니 나의 마음은 180도 바뀌게 되었다. 30년 만의 폭설이라면, 그 동안 제주도민이 느끼지 못했던 것을 며칠 여행 온 내가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다.
다음 날은 눈이 그치고, 날씨가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출발지였던 표선 해수욕장에는 눈이 쌓였는데, 걸으면 걸을 수록 눈이 녹는 모습을 봤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언제 눈이 왔나 싶었다.
정말 많은 눈도 따뜻한 날씨에는 어쩔 수 없었나보다.
그렇게 나는 겨울에도 걷고, 봄에도 걷고 하면서 제주 올레길을 완주 할 수 있었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걸었기에, 눈 가득 덮인 제주도도 걸으며, 벚꽃이 핀 제주도도 걸을 수 있었다.
날씨가 좋으면 더 걷기 좋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시기에는 걷기는 힘들었으나, 누구도 얻지 못할 멋진 사진들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감귤나무에 눈이 쌓인 모습, 야자수를 하얗게 만들어 버린 모습까지.
하필이면 쏟아져서 걷는 걸 방해하는 눈에서, 정말 아름다운 사진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진 중에 1장은 내 미술작품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눈이란 어쩌면, 우리 주변을 하얗게 물들여 많은 상상력을 발휘 시켜주는 도구이다.
누구는 하얀 눈을 보며 깨끗한 생각을 하고, 누구는 첫사랑과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래도 눈이 오면, 전방에서 고생하고 있는 우리 국군 장병도 조금은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그 젊은 청년들의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따라 다르다. 제주도에서의 폭설로 인해, 나는 일체유심조의 마음을 다시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