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걸으며 하늘을 보았다. 참 깨끗하다.
그리고 그 아래 펼쳐진 노랑이 빨강이 초록이 고동이들의 어우러짐에 마음을 빼앗긴 채 가던 걸음을 멈추고 한 참을 바라본다.
" 아! 가을아 조금만 더 천천히 가라. "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다.
이 예쁜 가을을 떠나보내야 한다니....
24년 가을처럼 잔잔하고 여유로운 단풍이 고운 가을을 만난 적이 있었던가? 싶다.
늘 바쁜 일상에 치어 허리 한 번 펼 때 겨우 고개 돌려 창 너머 맞은편 가로수를 바라보며 예쁘다던 단풍과 아름답다던 노을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단풍잎 사이로 파고든 햇살을 담으려 이리저리 손목을 돌리다 한아름 담고서야 또 발길을 옮긴다.
바스락바스락.
이 소리를 귀담아 들었던 게 언제였지?
대학 다닐 때 가을 낙엽 밟는 나를 보고 말을 건네오던 선배 생각이 난다.
낙엽을 너무 세게 밟는 게 아니냐며 놀리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너무 좋아서 낙엽을 발로 차듯 걸었던 나에게 무심히 던진 한 마디에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던 생각이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바닥에 쌓인 낙엽들은 많은 반면 나무들은 점점 굽은 제 몸을 드러내고 있다.
화려한 옷을 벗은 것일까?
힘들게 어깨에 팔과 다리에 등에 지고 있던 잎들을 내려놓은 것일까?
홀가분해 보이기도 하고 쓸쓸해 보이는 건 왜일까?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과도 너무나 닮은 꼴이 아닌가?
아쉬움 가득한 발걸음 끝 저 멀리에 검은 물체 하나가 보인다.
'뭐지? '
좀 더 가까이 다가가니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보고 있는지 돌아 앉아 있는지 겨우 형체만 보인다.
쉬 고있는듯하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그늘진 낙엽 위에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겨우 자리 잡았을 텐데 나 때문에 쉼터를 떠나야 하나 해서 내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가능하면 낙엽이 없는 곳을 밟으며 천천히 걸어서 그 옆을 지나간다.
녀석이 멀리에서 걸어오던 나를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 나를 헤칠까? 아닐까? 아님 먹을 거라도 주고 갈까?'
저 아이의 머리도 복잡했을 것 같다.
주머니에 손을 푹 집어넣고 더듬었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했지만 역시 빈 주머니였다.
저 아이는 외롭지 않을까?
씁쓸한 기분을 달래며 걸었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까지 가을이 완연하다.
일부러 아파트 뒷길을 택해서 조금 더 걸었다.
언제까지 느낄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 길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보지 않은 척 집으로 들어와 책상 앞에 앉았다.
가을은 떠나는데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방관자가 되어있다.
어쩌면 모두가 그렇게 외면하고 있다.
떠나는 가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