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

그날 버스에서 내리지 않았다면..

by 훈연

고등학교 2학년 때였던가.

학교로 향하던 버스 안에서 문득 이 버스를 타고 끝까지 가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야 할 정류장이 가까워질수록,
멀리 보이던 학교 건물이 점점 또렷해질수록
그 충동은 오히려 커졌다.


수험생활이 지쳐서였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당시의 내 삶에는 눈에 띄는 문제라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원만한 교우관계,
상위권의 성적,
집안의 안정적인 지지와 애정.


그날 나는 결국 목적지에 내려 멀어져 가는 버스를 지켜보았다.

정해진 시간에 등교하고
정해진 수업을 듣고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반복했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나도
그날의 충동은 사라지지 않았다.

문득문득 떠올랐다.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하염없이 갔다면,
그 버스에서 내리지 않았다면,

내 삶은 조금 달라졌을까.

부모님과 선생님은 놀라셨겠지.
걱정스레 이유를 묻거나, 혹은 혼내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물음에도
그럴듯한 대답은 없었을 것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저 내 안에서 일렁이던 어떤 열망을.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는 남는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기대와 선망, 회한과 절망은 늘 함께 따라온다.

그럼에도 그때 한 번쯤 나답지 않은 선택을 했다면,
지금의 나와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 아쉬움이 남아 있다.


반듯하게 자라
세상의 기대에 부합하며 살아온 나의 삶.

조금은 벗어나도,
약간은 흔들려도 괜찮았다는
그런 다독임이 필요했던 걸까.


그때의 열망은
아직도 내 안에서 조용히 일렁인다.

한 번쯤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했어도 큰일은 아니었을 텐데.

지나쳐버린 그 작은 불꽃 하나를

피워보았다면 어땠을까.

그 생각이
아직도 내 안을
은근히 덥힌다.


요즘의 나는 그때보다 훨씬 많은 역할을 안고 있다.

엄마이고, 아내이고, 누군가의 딸이고,

책임을 다해야 하는 어른이다.

그래서 더 이상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사라질 수는 없지만,


그때 내리지 못한 마음만은

여전히—

가끔씩,

나를 흔든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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