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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눈 뜨고 코 베이는 세상

-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느낌 -

by 부자형아

형님이 알려준 부동산과 통화한 다음 날.


수호는 부동산으로 가는 발걸음이 너무나 가볍다.

새로운 시작을 결정하자마자, 창업박람회가 열리고 대출도 저렴한 금리로 얻게 되었으며, 점포 또한 이렇게 좋은 자리를 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열심히 살면 뭐든지 다 된다는 생각이 아직까지는 수호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부동산은 형님이 운영하는 아이스크림 가게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자 사장님과 건물주로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사장님, 왔어요? 여기는 상가 건물주인이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수호가 생각했던 건물주의 모습은 아니었다.

누추한 옷과 오래된 신발, 머리는 며칠 안 깜은 듯했다.

그런 건물주에게 부동산 사장님은 쩔쩔맨다.

건물주 아저씨의 말 한마디에 격양된 반응과 가식적인 웃음.

얼마나 부자길래 저렇게 쩔쩔매는지 수호는 속으로 좀 이상하게 생각했다.


“사장님. 반찬가게 하고 싶다고? 몇 살이야?”

“저 35살이요.”


초면에 바로 반말이다.

수호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굉장히 싫어한다.


“장사는 좀 해봤어? 반찬가게가 보통이 아닐 텐데, 사람도 많이 써야 되고.”

“네네, 동대문에서 장사 좀 하다가 왔습니다. 돈도 있어서 요식업도 해보려고요”


코로나 때문에 힘들어져서...

대출받아서...

먹고 살기 위해 한다고 솔직하게 얘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너무 좋은 자리였기에 계약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계속 비위를 맞춰나갔다.

“오케이. 그럼, 보증금 3,000만 원, 월세는 200만 원으로 해서 계약서 씁시다.”

“네? 사장님, 월세 195만 원으로 알고 있는데 왜 5만 원을 올리시는 거예요?”

“아니, 지금 거기 프랜차이즈 넣을 거라면서? 그럼, 5만 원 정도는 더 올려야지. 개인 가게도 아니고 프랜차이즈인데 그 정도는 당연한 거 아냐?”

“아니... 저는 195만 원이라고 들어서 190만 원에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오히려 5만 원을 올리시면...”

“싫으면 다른데 알아봐. 그 자리는 일주일만 기다려도 하겠다는 사람 넘쳐나는 자리야. 저번 주에 세탁소 나가고 일주일밖에 안 돼서 그렇지. 210만 원까지도 받을 수 있는 자리인데 젊은 사람이 장사 한 번 해보겠다 그래서 내가 200만 원만 받으려고 하는 거야. 거기 주변 시세가 다 그래. 못 믿겠으면 옆집 가서 물어봐.”


잠깐 화장실에 간다며 자리를 비우는 건물주.

부동산 사장님이 이야기한다.


“사장님, 저 건물주가 여기 동네 유지야. 여기 주변 상가 거의 다 저분 거야. 30년 전에 싹 매입해서 지금까지 하나도 안 팔고, 진짜 독한 사람이니까 그냥 웬만하면 진행해요. 자리는 정말 좋은 곳이라 장사는 잘될 거야.”

그래서 부동산 사장님이 쩔쩔 맨 것이구나.

이런 얘기 해주라고 잠깐 나간 건가?

하지만 뭔가 억울한 수호다.


부동산 사장님께는 월세 195만 원이라고 들어서 5만 원 정도는 깎아달라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5만 원이 더 늘어나게 된 것이다.


보증금 3,000만 원 / 월세 200만 원 / 관리비 10만 원.

수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상가를 계약한다.


뭔가 억울했지만 그래도 좋은 자리라고 생각하며 사인을 한다.

건물주는 계약서도 안가져간다.

그냥 거기 부동산에 두란다.


공실이라 그런지 건물주가 인테리어는 바로 시작해도 괜찮다고 했다.

계약 시작일은 앞으로 한 달 뒤니까 공사 기간은 번 셈이다. 빠르게 움직여서 월세가 시작되기 전, 오픈 준비를 모두 끝내야 한다.

그렇게 계약금을 보내고 건물주와 수호는 같이 계약한 상가로 향한다. 건물주가 열쇠를 준다며 같이 가자고 했기 때문이다.


“사장님, 내가 사장님 같은 사람들 많이 봤어요. 젊은 사람이 와서 장사한다고 기고만장해서 콧대 높은 사람들 있잖아요. 나는 그런 사람들은 안 받아요. 사장님은 그래도 자세히 보니까 겸손하고, 돈도 좀 벌 관상이라 내가 특별히 받아 준 거예요. 내가 월세는 잘 안 올리니까 그 자리에서 오래오래 장사해서 돈 많이 벌어봐요.”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계약서를 쓰고 난 뒤부터 갑자기 존댓말을 하는 건물주.

경우가 없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던 찰나.


“그리고 화해조서라고 알아요? 소송하기 전 화해하는 내용인데, 나중에 사장님이 월세 안 내면 3개월 후에 쫓아내는 거에 합의한다는 그런 내용이에요. 나는 무조건 법적으로 하는 사람이라 다른 세입자들도 화해조서를 다 쓰니까 사장님도 알고 있어요. 내 법무사가 연락 한번 할 거예요.”

“화해조서요? 그냥 사인만 하면 되는 거예요?”

“법원으로 오라는 연락이 올 거예요. 거기 가서 그냥 네, 네, 네 3번만 하면 돼요. 별거 없어요. 비용은 아마 100만 원 조금 안 들 거예요.”

“네??? 100만 원이요?? 아니 그게 뭔데요?? 꼭 해야 하는 거예요?”

순 사기꾼 같았다.

이러려고 갑자기 존댓말 썼구먼.


수호는 100만 원을 내야 한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지만...

공사 기간 한 달을 빼준 걸 생각해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찾아보니 화해조서라는 것을 많이 작성하지만, 비용은 5:5로 지불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건물주는 수호가 다 내야 한다고 말한다.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수호는 힘 없는 세입자일 뿐이다.

시작부터 ‘을’로 출발하는 것이다.


수호는 공사를 위해 바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갑자기 할 일이 엄청나게 불어났다.

본사에서는 실측과 도면, 공사계획에 들어갔고, 며칠 뒤 계획서와 함께 우리를 찾아왔다.

은채 사무실 앞에서 인테리어 팀장이라는 분께 설명을 들었다. 막상 공사계획을 보니 추가로 들어갈 비용이 상당히 많았다.


보증금을 포함해서 1억이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던 수호.

1억 이상의 자금을 절대 투자하고 싶지 않았던 은채.


시작부터 수호와 은채가 생각했던 방향과는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 추가 비용

철거, 닥트, 샤시, 가스시설, 냉난방시설, 전기승압, 간판, 소방시설, 분전함, 온수기, 쇼케이스,어닝, 포스

-> 추가 비용은 점포의 위치와 여건이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 위 사항은 예측된 수치로서 세부 사항은 변동될 수 있습니다.

-> 위 조건은 점포 상황에 따라 견적이 상이할 수 있습니다.

프랜차이즈 박람회에서 계약서를 작성할 때 이런 설명은 전혀 듣지 못했다.

창업비용이 최대 7,000만 원이면 된다고 들었기에, 수호와 은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7,000만 원 안에 모두 들어가 있어야 하는 것들 아닌가?’

‘아니 냉난방시설이랑 쇼케이스, 간판 같은 것들은 왜 추가로 내야 하는 거지?’


수호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인테리어 팀장에게 물어본다.


“팀장님, 7,000만 원 안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가 있는 거예요? 냉난방시설, 전기, 소방, 온수기, 쇼케이스, 간판 같은 부분들은 인테리어 금액에 포함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닝은 뭔지도 모르겠구먼.”

“어닝은 밖에 비 올 때 막아주는 천막 같은 거예요. 어닝같이 추가 안 하셔도 되는 부분들은 저희가 인테리어 견적에는 넣지 않고요, 냉난방기랑 쇼케이스는 점주님께서 직접 찾아보시는 게 훨씬 저렴하기도 하고 중고로 하시는 분들도 계시기 때문에 따로 빼둔 겁니다.”

“그럼, 지금 7,000만 원 안에는 공사비랑 집기류 같은 것만 들어가 있는 건가요?”

“내부 수리랑, 전체적인 인테리어, 냉장고, 냉동고, 튀김기, 집기류 같은 것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요새 자잿값이 많이 올라서 공사비가 조금 올라가긴 했어요.”

“만약 냉난방기나 쇼케이스를 저희가 알아보게 된다면 공사 일정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저희가 드리는 계획표에 맞춰서 업체에 그날 방문해서 설치해달라고 하시면 됩니다. 만약 업체가 시간을 못 맞추면 계속 딜레이 될 거예요. 어려우시면 저희 쪽 협력업체 통해서 진행하셔도 되고요.”

“그럼, 저희는 추가 비용이 얼마 정도 들어가는 거죠?”

“정확한 건 견적을 잡아봐야 하겠지만 보통 1,000만 원 정도 더 들어가신다고 보시면 돼요. 쇼케이스는 따로 구입하셔야 합니다! 새로 구매하시면 500만 원 정도 할 거예요.”


계획표를 보니 당장 내일부터 공사에 들어간다.

일주일 뒤에 가스공사랑 냉난방기 공사가 잡혀있다.

그 다음주엔 닥트, 간판까지...

아니, 이걸 지금 당장 어떻게 알아보고 일정을 조율하란 말인가.

수호와 은채는 둘 다 직장을 다니고 있었으니 알아보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인테리어팀에 맡기겠다고 얘기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처음 창업하는 사람 중에 이게 가능한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프랜차이즈를 선택하는 이유는 혼자 준비하는 것이 어렵고, 가지고 있는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일 텐데, 그에 따른 비용이 예상보다 너무 많이 들어갔다.


수호는 다른 프랜차이즈들도 이런지 찾아봤더니 대부분이 다 비슷했다.

창업에 관한 광고나 전단지를 자세히 보면 맨 아래쪽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글씨로 써놓은 문구들이 있다.

추가 비용에 관한 부분인데 정말 작게 표시해 놓았다. 수호도 이제야 그 부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알려주는 본사 창업 비용이 전부라고 생각한 수호의 무지에서 비롯된 결과인 것이다.


인테리어 비용 7,000만 원, 추가 비용 1,000만 원, 쇼케이스 500만 원, 각종 비품도 준비해야 하니, 대략 2,000만 원이 더 들어가는 상황.


‘눈 뜨고 코베이는 세상이란 이런 것인가?’

이 생각을 계속 머릿속에 두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제는 온갖 서류를 작성하고 만들러 다녀야 한다.


식품위생교육, 보건증, 영업신고증, 사업자등록증,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직원 뽑기.


한 가지 다행인 점은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어떤 것부터 해야 하고 필요한 서류가 무엇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혼자 알아보고 돌아다녔다면 아마도 시청을 수십번은 더 방문해야 했을 것이다. 수호는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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