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청소년 SF,
11.2㎞/s이 필요하다

노마드 비평 1.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by nomadic critic


바야흐로 우주 개척 시대다.

2021년 10월 21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1차 시험 발사는

위성 모사체 궤도 안착 임무 전까지 모든 과정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2022년 여름,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에 참여한 우리나라는 달 궤도선 발사를 계획하고 있다.


스페이스 클럽 가입국으로서

우주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데 발맞추어

대한민국 청소년 SF도 꾸준히 출간되는데,

일반 SF로 출간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2019 대한출판문화협회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와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주관 프로그램 ‘2020 청소년이 직접 추천하는 청소년추천도서 100선’에

선정되었다. 이 책은 어떻게 청소년 독자들까지 사로잡았을까?


표제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비록 짧은 시간, 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긴 시간, 먼 우주를 말하고 있어 가장 SF답다.

성간 항해 기술로 워프 항법과 웜홀 항법을 제시하면서 ‘액시온 입자선’을 언급하는데,

실제로 액시온은 입자물리학에서 암흑 물질 후보 가운데 하나이다.

또 100년 동안 우주정거장을 점유하고

100번 넘게 잠들었다가 깨어난 주인공의 입으로

냉동 수면 기술 단계과 부작용까지 설명한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는

‘릴리 다우드나’가 유전자 시술로 신인류를 탄생시키는 인간 배아 디자인이 나온다.

‘제니퍼 다우드나’가 ‘유전자 가위 기술’로 2020년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사실을 알면 더 흥미롭다.

이처럼 김초엽은 화학 전공자답게

과학 지식들을 적절한 자리에 배치하면서 현란한 상상을 선보이는데,

SF는 과학적으로 치밀할 때 생명력을 갖는다.


외계인들의 몸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탄소를 주성분으로 하더라도

무한대에 가까운 다양한 형태가 가능하다는 것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이 곰팡이 포자에서

딱정벌레, 문어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형태를 가지고 있다1)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는데,

「공생 가설」에서는 수만 년 전 사라진 행성의 외계 생명체를

“지성 활동을 위해 숙주가 필요한 종류의 생명체”로 가정하고,

인간을 숙주 삼아 미토콘드리아처럼 아기들 뇌에 서식한다는 가설을 내세운다.

실제로 “우리 몸에는 100조 개 정도의 인간 세포와

100조 개의 10배가 되는 세균 세포가 같이 존재”2)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는 모두 동일한 유전자를 갖지만,

미토콘드리아는

원래 독립적으로 살던 세균이었기에 자신만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3)는 과학적 근거를 끌어와서

재미와 함께 진정성을 확보한다.


「스펙트럼」에서는

“색상 차이를 의미 단위로 받아들이는” 이족 보행 외계인을 만날 수 있다.

초소형 광자 추진체 우주선으로 시공간을 도약하여 심우주 탐사를 떠났던 생물학자 희진이,

다섯 개 위성을 가진 행성에서 인류 최초로 조우한 외계 지성 생명체이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풍경이 내 속에서 자신을 생각한다. 나는 풍경의 의식이다.”라고 말한 화가 폴 세잔을 인용하며,

“세계는 색으로 된 유기체”라고 하였다.4)

김초엽이 “풍경이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보이겠다고 상상한 행성인들처럼,

세잔은 ‘생트 빅투아르 산’을 바라보았던가 보다.

색채 언어는,

테트 창이 「당신 인생의 이야기」(김상훈 옮김, 『당신 인생의 이야기』, 엘리, 2016)에서

“일곱 개의 가지가 맞닿은 지점에 올려놓은 통”처럼 보이는 외계 생명체인 ‘헵타포드’의 언어로 상정한,

발화 언어와는 완전히 별개로 흘려쓴 낙서 같은 ‘그래픽 언어’만큼이나 독특하다.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

(로버트 A. 하인라인, Have Space Suit ― Will Travel, 1958, 최세진 옮김, 아작, 2020)에는

고등학생 주인공이

태양으로부터 25광년 떨어진 행성에서

외계인에게 선물 받은 ‘행복한 물건’이 나오는데,

머리에 갖다 대면 따스하고 안전하고 이해받고 있는 듯 느껴진다는 작은 추상주의 조각이다.

김초엽은 「감정의 물성」에서

초록색 네모난 자갈 ‘침착의 비누’, 푸른색 돌 ‘우울체’, ‘집중의 패치’, 공포체, 증오체까지 확장하여

“감정 자체를 조형화한 제품”을 다룬다.

‘생쥐의 혈뇌장벽을 넘어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미치는 실험’처럼 사실적으로 묘사되는 문장은 흡입력이 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어느 스타트업 회사에서 상품으로 상용화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SF에도 반감기가 있다면,

2017년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작 「관내 분실」은 반감기가 짧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다만 골고루 분배되지 않았을 뿐이다.”(윌리엄 F. 깁슨)라는 말처럼,

가상현실에서 죽은 가족을 만나는 체험은 보편화 되지 않았지만,

메타버스처럼 벌써 현실화 되었고, 텔레비전 휴먼 다큐멘터리로도 다루어졌기 때문이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에서 재경은

우주 저편으로 넘어갈 인류 최초 터널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해,

사이보그 그라인딩 프로젝트에 참가한다.

체액을 고분자 나노 솔루션으로 교체하고,

금속 기계와 바이오 나노봇을 결합하는

판트로피(우주 환경에 인간의 신체를 맞추는) 과정도 설명함으로써 구체성을 획득한다.

인체 비율이 5분의 1 미만인 마무리 단계에서는

아무 도움 없이 심해에서도 잠수가 가능해졌고,

재경은 우주가 아니라 바다로 뛰어들었다.

여기에는 작가가 끝맺지 않은 빈틈이 있다.

어쩌면 재경은

더이상 뭍에서는 살기 힘든 신체로 아가미까지 단 채, 바다를 개척하고 싶었을까?

터널 저편이든 심해든 어차피 편도 티켓이라면,

딸과 같은 하늘 아래 있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또 「스펙트럼」에서는

루이 개체가 죽고 나서 어린 개체가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와서 동일한 존재로서 루이가 된다는데,

「최후의 라이오니」(김초엽, 『방금 떠나온 세계』, 한겨레출판, 2021)에서처럼

같은 주형에서 복제되는 걸까,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서처럼

인공 자궁에서 배양되는 걸까?

그리고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 나오는 마을 사람들은

모두 릴리 한 사람의 클론들일까, 클론의 클론들일까?

더하여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는

행성 이민 같은 기술 혁명이,

개척 행성을 우주에서 갈라파고스처럼 고립시킴으로써

우주 이산 가족을 만든 결과를 타개할 방법도 여백으로 두었다.


그러나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복기 형식은 묵은지 맛이 나서 아쉽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주인공은 100년 전을 회상하고,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올리브가 릴리를 추적한 기록을 소피가 보는 형식이다.

「스펙트럼」은 할머니 삶을 손녀가 증언하는 셈이고,

「관내 분실」은 돌아가신 어머니 삶을 더듬어 쫓는 딸이 주인공이다.

심지어 「최후의 라이오니」는

호모 사피엔스로서는 먼 미래인 생명공학 기술로 불멸이 가능해진 세계조차,

주형 복제 시스템으로 태어나는 인간종의 회고로 서술된다.


그런데 김초엽도

청소년소설 『원통 안의 소녀』(창비, 2019)는

다른 많은 청소년 SF처럼 청소년 주인공 서사로 만들고 만다.

그래서 미세 먼지를 정화하고

인공적으로 기상 현상을 통제 가능할 만큼 발달한 미래에서도

재택 수업이나 사이버 학교 대신 지유는

“공기 정화용 장비들이 여기저기 달린 투명한 원통” 프로텍터를 타고 ‘학교’로 가야 한다.

“신체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고 오로지 뇌가 가상 세계에 접속된 형태로만 존재”하는 노아와

지유가 맞닥뜨리는 장면을 굳이 등하교하는 상황으로 그려낸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주인공을 청소년으로 한정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주제와 소재, 시공간 배경을 훨씬 다채롭게 설정하여 독자를 사로잡는다.

그리고 선정성, 폭력성, 언어 습관(욕설) 측면에서도

청소년 SF나 일반 SF와 변별되는 지점이 있을 뿐 아니라,

맛깔스런 문체 덕분에 서정적인 SF로 인식되지만

미래 과학 기술들을 시연해 보이면서 본격 SF로서 매력을 갖추었다.

그러므로 김초엽은

“대중적이며 감동적인 SF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작가”(한국일보, 2019. 12. 12.)로서,

대한민국 청소년 SF에서도 하나의 전환점으로 기억될 만하다.


로버트 A. 하인라인은

『여름으로 가는 문』(The Door Into Summer, 1957. 김창규 옮김, 아작, 2020)에서

만약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과거로 간 시간여행자일지라도,

수 세기에 걸쳐 누적된 기술이 없는 시대에서는 알고 있는 백만 가지를 실현하기 불가능하다면서

“철로의 시대가 와야 철로를 깔 수 있는 법이다.”라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철로의 시대가 왔으면 철로를 깔아야 하고,

우주 개척 시대가 왔으면 우주를 그려야 한다.

앞으로 청소년 SF에서만큼은

청소년을 주인공 삼아 오늘 여기의 은유로만 소비하지 말고,

훨씬 다양한 결을 가진 작품들이 쏟아지기 바란다.

SF 작가라면 과감할 필요가 있겠다.

대한민국 청소년 SF가 지구 탈출 속도로 나아가,

지구의 모래알보다 많다는 별들로 떠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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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튜어트 깁스, 이도영 옮김, 『달기지여 안녕』, 미래인, 2018, 185쪽 정리.

2) 송기원, 〈생명의 시작, 그리고 미래〉 4강 생명의 단위, 클래스 ⓔ, EBS1, 2021. 6. 29.

3) 김상욱, 『떨림과 울림』, 동아시아, 2018, 69~70쪽 정리.

4) 조광제, 「인공의 눈을 벗어버린 진짜 눈: 메를로퐁티, 세잔의 혹은 세잔으로의 길」,

『철학자가 사랑한 그림』, 알렙, 2013, 43쪽과 54쪽.



- 출처:《어린이와 문학》202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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