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산에 홈통이 있었다. 지금도 있다
시동을 켜니 차 온도가 25°로 찍힌다. 8월 9월 거의 33°, 34°를 기록했는데 십의 자리인 2자를 보고 깜짝 놀란다. ‘이렇게 내려가다니.’ 아침부터 내린 비 덕분이다. 목욕탕에서 한참을 놀다가 나오니 밤 10시가 넘었다. 찬물만 튀어도 깜짝 놀라던 내가 요즘은 거의 냉탕에서만 논다. 처음이 어렵지 익숙하고 나니 찬물이 더욱 상쾌하다. 우선 운동 후 느끼는 뻐근함이나 근육통이 찬물 목욕을 하고 나면 제번 완화되는 듯해서 운동 후 계속 찬물에 먼저 들어오는 냉,온욕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 더위에 찬물 목욕이 집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찬물을 틀어도 뜨뜻한 물이 나온다. 온수기를 틀지 않아도 미지근한 물 이상의 온도로 샤워를 할 수 있다. 한더위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서 수도꼭지를 틀게 된다.
어릴 적에 집안에서 남자들은 등목을 했다. 마을 우물가에서도 산이나 밭에서 일을 마친 동네 남자들은 등목을 했다. 바지를 입은 채 윗도리만 벗고 찬물을 등에 부으면 거의 “의이, 시원타” 소리를 질렀다. 영화에서 나오는 등목 장면을 어릴 때 많이 봤다. 그러면 여성들은 어떻게 한더위에 온몸의 열기를 식혔을까?
부엌에는 뒷문이 있었다. 뒤안은 여자들의 은밀한 장소가 되기도 했다. 우리집은 초가집이었지만 마당이 넓었다. 장독대는 부엌 서쪽에 붙어 있고 석류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그 뒤로는 왠만해서는 잘 안가는 뒤안이 있었다. 지붕을 덮는 큰 감나무가 있었고 늘 축축해서 놀기로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대야에 물을 떠서 부엌 뒷문으로 나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떠오른다. 어머니를 따라 나서던 한여름밤의 물놀이!
우리 동네엔 약수터가 하나 있었다. 지금도 그 산 아래 작은 암자에서 먹는 물로 사용한다. 그 물로 간장도 담그고, 국도 끓이고 차도 닳인다. 어느 대학교에서 수질 검사를 하여 이상이없다는 것을 확인도 했지만 우선 물이 부드럽다. 아주 가물 때를 제외 하고는 물이 마르지 않는다. 그 절에서 다 쓰는 건 아니다. 아는 분들은 주전자나 물통을 가지고 와서 물을 받아 가신다.
여름철 해가 지고 어둑어둑 해지면 어머니와 고모와 동네 여자분들이 마을의 작은 광장에 모였다. 작은 광장은 모시를 벗긴 제릅(삼대의 방언)도 세워 놓기도 하고 타작을 하던 곳이다. 뱀을 쫓는 긴 막대를 들고 들어가는 밭둑을 툭툭 치면서 “홈대”로 들어갔다. 그 약수터를 ‘홈대’라고 불렀다. 홈대는 마을 산 밑에 있지만 지금 보면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 홈대에 대나무를 쑥 박아놓았는데 기막히게 찬 물이 흘러나왔다. 나환자들이 와서 목욕을 학고 가기도 한다는 손문도 있었다. 어린 나는 실제로 본적은 없다. 모두 옷을 입은 채로 홈대 앞에 서서 물을 맞았다. “아이고, 차, 차, 차”하면서 두 손으로 물이 떨어져 내리는 몸을 비볐다. 어린 애들은 엄두도 못 내고 둑에 서서 지켜보았다. 튀어오는 찬 물방울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니 ‘홈대’가 우리 마을만의 통용어가 아니었는지 갑자기 궁금하여 검색해 보니 홈통(桶)이란 단어의 다른 말이다. 홈통은 ‘물을 이끄는 데 쓰는 긴 통’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물이 나오는 산에다가 대나무를 푹 박아서 물이 나오는 곳을 ‘홈대’라고 불렀다. 지금도 ‘홈대’는 물을 길게 흐르게 하는 호스 명칭으로 쓰고 있다. 내 기억 속의 단어인 ‘홈대’에서 우리 마을 여성 사람들은 해가 지고 나서 옷 입은 채로 한더위를 씻고 왔던 것이다. 남자 사람들은 아마 한낮에 더울 때 산에서나 밭에서 일하고 내려오면서 등물이나 물을 맞지는 않았을까? 요즘 같으면 며느리도 시아버지 앞에서 수영복 입고 다니는데 그 땐 해가 지고 나서야 옷 입은 채로 물을 맞는 시대였다. 비가 한 차례 오고 난 후 기온 이 급격히 내려가 하룻밤 사이에 선풍기가 필요가 없어졌다.
이 글을 쓰다가 성철 스님 둘레길 걷기에 참가하게 되었다. 센 비를 맞게 되었는데 일행들이 소리친다. “더운 것 보다는 나아!”
시간이 다 해결해 준다. 떨어진 나뭇잎을 보니 한더위 때문에 숨막혔던 시간은 벌써 발아래 밟히는 갈색 나뭇잎이다. 내년에 다시 온다고 하지만 더위, 추위 그렇게 되풀이 되면서 인생이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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