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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가 Dec 01. 2024

우리 시어머니가 달라졌어요.

지킬수록 좋아지는 경계의 역설


아니! 제가 최고라고요?

얼마 전 시어머니의 구순을 맞았다. 가족들과 점심을 함께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시누이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헤어지는 인사를 나누며 어머니를 살짝 안았더니 "우리 큰며느리가 최고다. 가정을 잘 지켜줘서 고맙다"라고 하시며 살짝 눈물까지 보이신다(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집안에는 아픔들이 많았다. 오랜 기간 남편의 실직이 이어졌고 이후엔 크게 아팠다. 게다가 시동생이 먼저 먼 길을 떠났다. 어머니는 그 과정들을 지켜보시며 결혼 당시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나를 고마워 하신다).


아니! 어찌 그런 말씀을?

단언컨대 나는 어머니 말씀처럼 최고의 며느리가 아니다. 과거비교하면 나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는다. 어머니의 바람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지만 충족시켜 드리지 않는 불량 며느리다.






나이 든 사람도 변한다

흔히 나이 든 사람은 변하기 어렵다고 한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라는 말 역시 우리가 흔히 쓰고 듣는다. 사람의 본성이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나가느냐에 따라 상대의 대응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아도, 나에 대한 대응 전략은 변하는 거다.


본성이 변든 대응전략이 변든 뭐든 상관없다.

관계만 개선될 수 있다면 나는 대만족이다.


어머니는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나에게 무례한 언행을 하지 않으신다.


심지어 어쩌다 전화를 드리면 그렇게 말투가 부드럽고 교양이 넘칠 수 없다. 작은 것에도 고마움을 표현하신다.


그때마다 어머니께서 처음부터 지금처럼 선을 잘 지켜주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아쉬운 마음이 수백 번씩 든다.


그럼 내 소중한 반쪽을 낳고 러주신 어머니를 진심으로 마음속 깊이 사랑할 수 있었을 텐데. ㅠㅠ


관계가 회복되었지만 내 마음의 상처는 명품 수선 장인의 손길이 닿은 듯 흔적 없이 말끔하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피를 나눈 사람과는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유전자를 공유하지 못한 시어머니와는 아직 그게 안 된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 정도도 만족스럽고 감사하다.




늦었지만 참 다행이다

나는 오랜 기간 어머니를 죽을 만큼 미워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어머니가 밉지 않다.


선을 넘지 않으시니 어머니를 만나도 화나 분노가 일지 않는다. 오히려 하루하루 노쇠한 어머니 모습에서 내 미래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  뿐이다.


어머니를 만나는 순간이면 좀 더 잘해드리려 마음 쓰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우리 사이에 다시는 올 수 없을 것 같았던 시간이 찾아온 것이 기쁘고 감사하다.






분노와 불평 대신 불편을 연습했다.

화와 분노를 꾹꾹 참아가며 계속해야 했던 소위 며느리의 도리라 불리는 것들을 잘라내는 데에는 용기와 긴 견딤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조차 나를 변화시키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남에 의해서 내가 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내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전과는 아주 다른 사람이 돼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실 때까지 어머니가 긴긴 시간 느꼈을 서운함과 힘듦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나이 들어 변하시려니 더 힘드셨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힘든 걸 시어머니가 해내셨다.


늦었지만 참 다행이다.


진심으로 어머니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즐겁게 사셨으면 좋겠다.


분노와 불평 대신 불편을 연습하고 실천한 결과다.





는 효도 싫다

책감은 사람을 짐승과 다른,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


면에 상대를 내 생각대로 끌고 가기 위한 기술로 자주 악용됐다.


그만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특히 부모, 형제 등 가까운 사람들이 자주 쓴다.  


자식이 효도하려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산다고,

부모 살아계실 때 효도해라. 후회하지 말고....


그냥 서로 사랑하자고 하면 

참 자식들 마음 불편하게도 말한다.


나는 효도가 싫다.

정확하게 말하면 은근히 효도를 강요하는 우리 문화가 불편하다.


공부하려고 막 책을 펼쳤는데, 부모가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면 하고 책을 덮어버리고 싶심정? 

딱 그런 마음이다.


고단한 세상을 살아내 보면 부모의 노고가 가슴 시리게 와닿는 순간이 다.

강요하지 않아도 알아서 마음이 간다.


막말로 몰라줘도 할 수 없다. 

자식이 낳아달라고 동의한 적도 없는데?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 만나다

부모, 자식이라는 이유로 부모의 무례가 무조건 용서되던 좋은 세상은 다 물 건너갔다. 


게다가 100세 시대다.

효도를 강요하는 서민들의 평균수명이 35세라던 조선시대에나 통하는 말이다


우리는 어쩌면 70년 이상 얼굴을 보며 살아야 지도 모른다.


세상에나! 

우리는 그간 인류가 한 번도 체험하지 못했던 들후들한 시대를 만났다. 


이젠 어느 순간부터 자식과 함께 늙어게 생겼다.

다가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아무도 모른다.


서로 사이좋게 그 긴 세월을 살 가려면 아무리 가까운 부모와 자식(며느리, 사위)사이라도 건강한 거두기는 필수다. 그래야 서로 미워하는 일 없이 웃는 낯으로 더 오래오래 사랑할 수 있다.



지킬수록 좋아지는 경계의 역설

끈끈한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의 집단 문화 속에서 주변 사람, 특히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선을 지켜 달라는 말 쉽지 않다.     


자칫 나를 싫어하게 되거나 서먹한 관계가 될까봐 두려움도 느낀다.     

상대는 나를 차갑고 심지어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여길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자율과 독립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타인의 자율과 독립 역시 중요하게 여긴다.

남이야 어떻든 내 이익만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무엇보다 서로 경계를 지키면 갈등이나 다툼을 피할 수 있다.

더 오래 좋은 사이유지.     


불안함이나 불쾌함 대신 안전하다는 느낌을 느 것이, 오히려 점점 사이가 좋아질 확률이 높아진다.     


그야말로 지킬수록 사이가 좋아지는 경계의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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