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사막, 요르단에서 살아가기 위한 안내서
요르단을 이해하기 위해 이보다 더 좋은 단어는 없을 것이다.
일상의 느긋함보다는 빠름에 익숙하고, 가만히 명상하기보다는 초 단위로 바뀌는 휴대폰 화면을 보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요르단은 정말 만만치 않은 곳이다. 이곳 역시 정보화의 바람 속에 휴대폰이 일상 필수가 되었지만, 매일 만나는 현지인들의 몸에는 오랜 시간 축적된 그들만의 습성이 여전히 짙게 배어 있다. 나 역시 요르단에 처음 도착해 아무런 정보 없이 헤맬 때 들었던 이야기인데, 지금도 누군가 요르단에 처음 왔다고 하면 가볍게 전해주는 말이 있다.
"중국의 만만디가 중동의 인샤알라 앞에서 울고 갔다." 그리고 "IBM 이야기."
2000년대 초반, 궁핍했던 대학 시절 중국을 여행할 때 나는 느긋하게 즐기기보다는 늘 시간에 쫓겼다. 지역에서 지역으로 이동할 때 주로 기차를 탔는데, 기차가 연착되어도 전혀 개의치 않고 기다리는 그들의 모습에, 성격이 급했던 나는 그저 속을 삭이며 아무 행동도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표를 파는 판매원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 바로 '만만디(慢慢地)'였다.
'천천히'를 뜻하는 만만디는 결국 '내가 해야 할 것을 천천히 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인샤알라는 다르다. 인샤알라는 '내가 할 수 없다', 혹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뜻을 품고 있다.
IBM은 외국계 컴퓨터 회사가 아니라, 중동 지역 대표 세 단어의 앞글자를 따 만든 말이다.
'I'는 인샤알라(Inshaallah), 'B'는 부크라(Bukra), 'M'은 말레시(Malleshi)이다.
이 세 단어에는 중동 사람들의 삶의 태도와 사고방식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중 '인샤알라'는 가장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알라가 뜻하는 대로'라는 뜻을 가진 인샤알라는, 영어로는 'God willing'이라고 번역된다. 이 말은 아랍인 특유의 여유로움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그들의 태도를 풍자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빨리빨리'를 강조하고 속도를 중시하는 한국인에게 인샤알라는 참 적응하기 힘든 문화다. 그러나 이 말에는 단순한 게으름 이상의 깊은 세계관이 깃들어 있다.
그들이 믿는 절대자인 알라에 대한 신뢰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알라를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우리가 이 문화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 점에서 보면, 한국인과 중동 사람들은 거의 정반대 성향을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자연에 순응하고 여유롭고 온유한 민족성을 지녔을지 모르지만, '하면 된다'를 외치며 노력과 능력을 통해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룬 오늘날 우리는, 모든 일을 계획하고 계획을 현실화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미래조차 내 계획 안에 두고 통제하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라가 뜻하는 대로'라는 인샤알라의 진정한 의미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자신이 책임질 수 있을 것 같은 아주 작은 일조차 절대자의 뜻에 맡긴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무책임하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그렇게 말하는지, 아니면 최선을 다했지만 안 되었기에 인샤알라를 외치는지는 알 길이 없다.
결국, 인샤알라는 이들의 게으름이라기보다는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자세로 볼 수도 있다.
우리는 인샤알라를 통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인식을 배울 수 있다.
한국에서는 모든 일을 책임지고 끝까지 해내야 하는 분위기 속에 살며, 그로 인해 스트레스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 최근 연이어 들려오는 유명인들의 비극적 소식은, 이런 생활방식의 폐해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물론 계획하고 책임지려는 자세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에 앞서, 나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영역을 인정하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런 인식은 오히려 우리에게 신선한 자유를 줄 수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경기에 집중하며 그 과정을 즐기는 스포츠 선수처럼, 결과가 아닌 과정을 살아갈 수 있게 해 준다.
요르단에서 살아가다 보면 이곳 사람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가끔 느낄 수 있다.
자기 일도 제대로 못 하고 약속도 지키지 못하면서도 어딘가 당당한 그들의 모습은 때로는 당혹스럽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삶이다. 절대자를 믿지 않는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들에게는 삶의 일부다.
다음으로 '부크라'는 '내일'이라는 뜻을 가진 아랍어다. 처음에는 한국어의 '내일'처럼 곧 다가올 시간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부크라는, 단순한 내일이 아니라 막연한 미래를 뜻하기도 한다. 그 '내일'이 한 주 뒤가 될지, 한 달 뒤가 될지, 심지어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막의 유목민 생활에서 비롯된 시간 개념일 것이다. 언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 환경에서, 시간은 느슨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말레시'라는 단어가 있다.
요르단에서 살면서 이 단어를 자주 듣지는 않았지만, 의미는 대략 이렇게 풀이된다.
"괜찮다, 참아라, 그럴 수도 있지."
한 나라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을 보면 그 나라의 특성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은 세계 어디서나 '빨리빨리'로 통한다. 동남아나 다른 나라에서 한국인이라고 하면, 인사보다 먼저 '빨리빨리'를 외친다. 우리는 그 '빨리빨리' 정신으로 50년 만에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성장했다.
언제부턴가 나도 대화 끝에 자연스럽게 인샤알라를 붙이는 나를 발견한다.
가끔 인샤알라를 이야기하면 한국에서는 느끼기 힘든 편안함을 느낀다. 목표만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가던 삶에서, 잠시 주변을 어루만지며 가는 기분이 들어서다.
하지만 업무를 할 때, 말끝마다 인샤알라를 붙이는 직원에게는 다시 한번 마감일을 확인하고 업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 단어의 뜻은 이해했지만, 아직 내 몸에 채화되지는 않았기에, 나만의 템포에 맞추어 그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