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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당 Nov 24. 2021

마당있는 집

한옥을 새로 짓거나 크게 수선하는 경우 워낙 살던 집을 비워주고 나면 공사기간 동안 갈 곳이 없어져 버린다. 물론 돈이 아주 많아서 기존에 살던 집에 그대로 살면서 한옥을 한 채 사고, 여유롭게 고친 뒤 이사 갈 수 있다면야 참 좋겠지만 그건 다른 세상 이야기라.


거주 환경이 바뀌는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크기에 전셋집이 있던 동네의 오피스텔을 알아봤었는데, 비싼 동네라 그런지 보증금 이천만 원에 월세 백오십만 원은 내야 그래도 살만한 곳을 구할 수 있었다. 보증금이라 생각하면 크지 않을 돈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공사비를 생각해보면 다음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아 보증금을 늦게 돌려받는 상황이나, 이사를 간 뒤에도 계약기간 내내 빈집에 월세를 내는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바로 그때 구원투수로 등판한 곳이 곳이 사택. 서울 시내에 마당이 있는 삼십 평대 단독 주택을 일억 원대에 전세로 빌려주고. 더군다나 언제 든 간에 이사를 가게 되면 보증금은 즉시 돌려주겠다고 하니, 아 '이 회사에 정말 뼈를 묻어야겠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택 최우선 배치 대상자가 아닌 관계로 회사 눈치가 좀 많이 보이긴 했지만 앞뒤 가릴 때가 아니기도 했고, 다행스럽게도 최우선 배치 대상자들이 단독주택이라는 이유로 이 사택을 기피하여 무사히 이사할 수 있었다.


사택은 비어있는 채로 이 년 정도가 지난 아주 오래된 단독주택으로, 마당은 환삼덩굴을 포함한 온갖 잡초로 뒤덮여있고, 마루는 죄다 들떠있는 등 정말 손이 많이 갈 상황이었지만, 아무렴 어떨까. 남은 과정 중 안전하게 살 곳을 얻은 것만으로도 그저 기뻤다.


2021.05.21. 삼청동 한옥 매매 계약

2021.06.07. 설계예비계약: 선한공간연구소

2021.08.07. 정든 집을 떠나 사택으로 이사


마당의 이블린 장미(2021), Pentax MX/Kodak Proimage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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