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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세 Jan 28. 2021

오지랖이 넓은 것은 폭력이다 2

오지랖 넓다의 정의와 오지랖의 정도 2

오지랖 넓다의 정의와 오지랖의 정도 2

@ 오지랖 넓다 : 주제넘게 아무 일에나 쓸데없이 참견하다.


- 아무 일 :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온갖 상황에, 심지어 자신과 관련도 없는 사람의 일에까지 끼어드는 것이

오지랖 넓은 것이다. 

여기에서의 아무 일이라는 의미는 상대방이 원하지도 않고 굳이 도와주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말한다.

상대방이 원하지도 않는데 자기만의 생각으로 관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자신은 도움을 주려고 하는 언행이겠지만, 상대방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이다.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대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있다.

그녀에게는 조카딸이 있다. 언니의 아들의 딸이다. 하나밖에 없는 귀한 딸이다. 그녀에게는 손녀인 셈이다.

얼마나 예쁘고 귀엽겠는가. 잘 키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런 마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자꾸 조언을 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간섭이다.


가수 장기하의 말을 빌려보자.

"듣는 사람이 받아들이면 조언, 안 받아들이면 잔소리"

조카는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아무리 조카이지만 그의 방식에 우리가 뭐라고 할 수가 없다.

우리 생각이 꼭 옳은 것만이 아니다. 그러므로 더더욱 간섭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하는 말이라 할지라도 이것도 아무 일에 해당된다.


아무 일에나 끼어드는 사람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호기심이 많다는 것이다.

수능 시험을 망쳤다고 생각한 학생이 시험장에서 나와 버스를 탄다.

버스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물어본다.

"학생 시험 잘 봤어?"

그냥 하는 소리다. 사실 시험을 잘 봤는지 못 봤는지 관심 없다.

딴에는 생각해준다고 하는 소리다.


원래도 이발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이발할 때는 머리를 아주 짧게 깎는다. 

몇 달 동안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가 너무 길다 싶으면 깎으러 간다.

이발한 지 얼마 안 된 나에게 어떤 할머니께서 말한다.

"아이고 누가 보믄 군인인 줄 알겄소. 너무 짧어."

"네. 자주 이발하러 가는 게 싫어서 짧게 깎아요"

"그래도 그렇지 나이하고 위치가 있는디 너무 짧어"


이발할 때가 다 된 나에게 어떤 아주머니가 말한다.

"이발해야 쓰겄네. 잘하면 묶어야 쓰겄어"

"코로나가 좀 진정되면 가려고요"

"코로나가 언제 끝난다고. 마스크 쓰고 가서 짜르믄 되제"

분명히 설명을 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런 분들이 의외로 꽤 있다.

나쁜 의도는 없으므로 기분이 나쁘지는 않지만, 대답을 안 할 수도 없고 하려니 지친다.


명절에 친척끼리 만난다. 

"아무개야 장가 안 가냐"

"네. 저는 독신주의라서요"

"아이고, 그라믄 쓴다냐. 니 부모한테 아들이라고는 너 밖에 없는디 대는 이어야제"

딱히 틀린 소리는 아닌 듯싶다.

하지만, 결혼을 단순히 대를 잇기 위해서 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런 말을 명절 때마다 듣다 보니 명절에 집에 가지 않는 비혼주의자도 있다고 한다.

나는 독자다. 내 자식들이 아들을 낳지 않으면 대가 끊긴다.

나는 아이들에게 "우리 집 대가 끊어져도 상관없으니 좋은 사람 못 만나면 결혼 안 해도 된다."라고 말해왔다.

결혼을 하고 안 하고는 내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부모로서 조언은 해줄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의 의사가 확실하다면 어떤 이유로도 결혼을 강요할 수는 없다.

내가 살아주는 것이 아니니까. 

결혼을 하고 나면 모든 것을 내 자식이 짊어져야 하니까.


"너무 치마를 짧게 입은 것 아녀?"

"옷을 너무 야시 하게 입었네"

요즘에는 이런 말도 성희롱에 해당되지만, 예전에는 그냥 막 하는 말 중의 하나였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그냥 막 내뱉는다.


오지랖이 넓은 것이다.

마음에 대한 폭력이다.


오지랖이 넓으면 안 되지만, 적당한 오지랖은 있어야만 한다.

나와 관련 없는 일일지라도, 그것이 공공의 이익을 위하는 것이라면 오지랖을 부려야 한다.

"여기에서 담배 피우시면 안돼요."

"임산부 전용 자리인데, 임산부에게 자리를 내어 주셔야죠"

"엘리베이터에서는 마스크를 써야 합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닐지라도 적당한 오지랖은 부려야 한다.

리어카를 끌고 언덕길을 힘들게 올라가고 있는 사람을 보면, 뒤에서 밀어줘야 한다.

울면서 엄마를 찾고 있는 아이를 보면, 경찰서에 데려다주어야 한다.

차에 깔려 있는 사람을 보면 지체 없이 달려들어 차를 들어 올려야 한다.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직접 가서 뭐라고 하기에는 너무 무서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도와주어야 한다. 112에 신고를 하든지, 소리를 크게 질러 주든지라도 해야 한다.

자신과 관련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꼭 도움이 필요한 경우는 너무나 많다.

이것은 아무 일에 해당되지 않는다.

오지랖이 넓지 않고 적당하게 작용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도 줄 수 있고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드는 것에 일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의인은 오지랖이 적당한 사람이다.

요즘에는 오지랖이 너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 모든 단어의 뜻은 다음 국어사전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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