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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세 Jan 28. 2021

오지랖이 넓은 것은 폭력이다 1

오지랖 넓다의 정의와 오지랖의 정도 1

@ 오지랖 –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

@ 오지랖 넓다 – 주제넘게 아무 일에나 쓸데없이 참견하다.

@ 우리 – 자기와 함께 자기와 관련되는 여러 사람을 다 같이 가리킬 때, 또는 자기나 자기편을 가리킬 때 쓰는 말. 일부 명사 앞에서 관형어로 쓰여, 말하는 이와 관련된 것을 친근하게 가리키는 말.

@ 관심 - 어떤 것에 마음이 끌려 신경을 쓰거나 주의를 기울임. 또는 그런 마음이나 주의.

@ 참견 – 어떤 일이나 말에 끼어들어 간섭하거나 관계함.



겉옷의 앞자락이 길면 보기도 싫을 뿐만 아니라 걸어 다닐 때 거추장스럽기까지 하다.

물론, 요즘 롱 패딩이 나와서 무릎 아래까지 덮지만

이것은 옷의 전체가 긴 것이다.

뒷자락이 긴 옷은 봤다. 지휘자의 옷이다. 펭귄의 옷이다. 멋있다.


오지랖 넓다의 정의에 '주제넘게', '아무 일에나', '쓸데없이', '참견'

이렇게 부정적인 느낌의 단어가 네개나 들어가 있다.

저 단어 중 하나만 있어도 상당히 문제가 많은데 무려 네 개다.

오지랖은 넓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주제넘다 :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것도 곤란한 문제인데 지나쳐서 건방지기까지 한 것이 오지랖 넓은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이유는 주제를 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산수를 가르치는 이유는 분수를 알려주기 위함이라는 말이 있다.

주제와 분수를 알고 넘지 않는 것은 아주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도 지키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주제와 분수에 맞게 말하고 행동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네 주제를 알아야지"

"이것이 분수도 모르고"

이것은 주제와 분수를 잘못 쓰는 아주 나쁜 인간들이 하는 말이다.

주제와 분수를 아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아주 중요한 것인데, 

주로 사람의 능력을 무시하거나 인격 모독을 할 때 사용하여지고, 

자신이 우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사용하다 보니

주제와 분수를 안다는 것이 마치 패배자인 것처럼 인식되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실상은 저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자신의 주제와 분수를 모르는 것이다.

내 주제와 분수를 안다면 결코 상대방에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오지랖에서의 주제와 분수는 상대방과 관계된 경우에는 꼭 지켜져야만 한다.

지위가 더 높은 사람, 더 나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하여 인격적으로 더 나은 것은 아니다.

전문직이라고 해도그저 다른 사람보다 그 직종에 대해 전문가일 뿐이다.

누구나 다 어느 것 하나에서는 전문가이다.

모두 주제와 분수를 잘 알아야 한다.

나이가 더 어린 사람은 자신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나이 대접 정도는 더 해주어야 한다.

물론 나이 값 못하는 사람까지 나이 대접할 필요는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이 대접은 해주는 것이 자신에게 더 좋다.


가끔 주제와 분수를 너무 생각한 나머지 자신을 낮춰버리거나, 자신감을 잃어버리거나, 

아예 도전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다른 사람과 관련된 것이 아닌, 

나의 앞 날과 관련된 것에 대해서 혹은 무엇인가 해보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주제와 분수를 넘어보는 것이 좋다.

사람의 능력은 생각 이상으로 무한하다.

내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나도 모른다.

일단 주제와 분수를 넘어봐야만 알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다른 사람과 관련된 것이 아니므로 '오지랖 넓다'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나는 기타를 절대 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단언해왔다.

대학생 때 기타 치는 사람들이 너무 멋있게 보이고, 당시에는 통기타 가수의 전성시대여서

기타를 배워보려 했으나 손가락이 짧고 굵어서 한 번 잡아보고 바로 포기했었다.

군대에서 시간이 많이 남고 마침 기타를 잘 치는 병사도 있어서 배워보려 했다가

내가 내는 기타 소리가 귀에 너무 거슬려서 포기했다.

나는 음치이며 박치이다. 그런데 노래 부르는 것은 좋아한다.

반주 없이 부르라고 하면 그런대로 잘 부른다. 일단 박자는 틀려도 되니까.

원래는 반음이 미파, 시도에만 있지만, 내 노래에는 전 음계 사이에 반음 혹은 반에 반음이 존재한다.

물론 내 의지와 아무런 상관이 없이 나온다.

혼자 부를 때는 일부러 그렇게 했다고 우기면 그만이다.

같이 부를 때는 나로 인하여 불협화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합창, 중창을 선호하지 않는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내가 내 마음대로 반주하며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기타를 배우려고 했다.

그러나 조금 치니 손가락이 아프고, 아픈 단계가 지나니 손가락 끝이 굳어져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방해했다.

물론 소리도 엉망이었다.

결국 일주일 만에 포기했다. 이때가 30대에 접어든 시점이다.

그리고 26년이 흘렀다.

56살에 들어서면서 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기타를 배우기로 했다.

아는 사람이 기타 고수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르쳐달라고 했다.


손가락 아플 것을 대비하여 손가락 끝을 굳어지게 하는 훈련부터 했다. 

기타 줄을 잡으면 손가락이 너무 아프기 때문에 수시로 단련했다.

일명 "손가락 끝의 살을 손톱으로 계속 찔러대기".

내가 개발한 방법이다. 

연습은 게을렀다. 어깨도 아프고 허리도 아파서 길게 할 수 없어서 기껏해야 하루에 30분.

그것도 안치는 날이 더 많았다. 불량한 제자였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지금은 기타 못 치는 사람이 들으면 '뻑'가고

기타 잘 치는 사람이 들으면 '좀 치네'라고 말하는 수준까지 왔다.

절대 불가능한 기타가 나의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


다른 사람과 관련되지 않는 나의 일이라면 마음껏 주제와 분수를 넘어보자.


@모든 단어의 뜻은 다음 국어사전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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