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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세 Dec 10. 2020

마음껏 눈물을 흘리자 3

웃음과 울음의 차이 

국민학교 1학년 때  달려가다가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다.

하필이면 사람들이 많은 시장에서.

뒤따라오던 엄마는 너무 놀라서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달려오시고,

길을 가던 사람들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거리고 웃는다.

까진 무릎과 손바닥과 팔꿈치를 보시고, 결국 엄마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나는 아팠지만 창피해서 울음을 참고 있었는데, 엄마가 우니까 울고 말았다.

창피한 줄은 잊어버리고 엄마 품에 안겨 엉엉.

웃던 사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제 갈길을 간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가정생활 환경 조사를 했다.

문서로 한 것이 아니라, 담임 선생님이 교탁 앞에 딱 버티고 서서 물어보신다.

"집에 텔레비전 있는 사람" 

"라디오 있는 사람"

"아버지 대학교 나온 사람" 

"아버지 고등학교, 중학교 나온 사람"

나는 전혀 손을 들지 못하고 있다가 "아버지 국민학교 나온 사람"에서 자랑스럽게 손을 번쩍 들었다.

"엄마 대학교, 고등학교, 중학교, 국민학교 나온 사람"

선생님은 여기까지만 물어보고 더 이상 물어보지 않으셨다.

"선생님 아직 저 손 안들었는디요"

"엄마 어디 나오셨는데"

"저희 엄마는 학교 안다니셨는디요."

아이들은 손뼉 치며 깔깔거리며 웃고, 선생님은 활짝 웃으셨다.

나는 창피한 줄 전혀 몰랐고, 그저 선생님과 친구들이 웃으니까 좋았다.

집에 와서 자랑스럽게 엄마에게 얘기해줬다.

그런데, 엄마는 나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셨다.

"엄마가 미안하다"

엄마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미안하다고 하시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뭔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울었다.

내 엄마는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숫자도 글자도 모르고 사셨다.

너무 답답하셨을 것 같은데, 엄마는 전혀 내색을 안하셨었다.

소위 일자무식인 엄마는 아들은 의사로, 딸들은 교사와 교수로 키워 놓으셨다.

 


한 학년이 끝나면, 정근상(결석 한 두 번 한 사람), 개근상(지각이나 결석을 한 번도 안 한 사람), 우등상(성적 좋은 사람)을 줬었다.

1학년이 끝나고, 개근상과 우등상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집에 왔다.

어깨에 잔뜩 힘주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엄마께 상장을 드렸다.

엄마는 너무나 기뻐하시면서 엉엉 우셨다. 소리 내어.

내가 또 엄마를 울렸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엄마가 왜 우셨는지를 몰랐다.

"엄마 내가 상 받았는데 왜 울어부러요?"

"기쁭께 울제. 우리 아들이 상 받아와서 엄마가 허벌나게 좋응께 울제"

내가 다쳤을 때보다 더 크게 더 많이 우시는 엄마를 보았다.

나는 엄마가 우시는 모습을 보며 좋아서 웃었다.


국민학교 졸업할 때에는 더 많은 상을 준다.

가장 큰 상은 교육감상, 다음으로는 도지사 상, 교장 상, 교감 상, 전남매일 사장상 등등...

나는 전교 2등을 했으니까 당연히 도지사 상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전남매일 사장상을 줬다. 작은 국어사전과 함께.

상을 받았으니 당연히 기뻐야 할 텐데,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이해할 수 없었다. 집에 와서 엉엉 울며 말했다

"나보다 훨씬 공부도 못하는 성훈이가(우리가 세 들어 사는 주인집 아들) 도지사 상을 받아 불고 나는 전남매일 사장 상 밖에 못 받아부렀어"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학교에 따지러 가셨다.

담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학교 성적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웅변대회에 나가서 받은 상들도 다 합해서 상을 주는데, 

성훈이는 웅변대회에서 받은 상이 많고, 장훈이는 학교 밖에서 받은 상이 없으니까 그런 것입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말씀을 못하시고 내 손을 잡고 교무실을 나서면서,

"아버지가 못나서 미안하다"라고 하시며 고개를 떨구셨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나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여전히 성훈이보다 더 낮은 상을 받는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억울해서...


아이들과 코미디 프로그램을 본다. 함께 웃으며.

가끔은 아이들은 웃지 않고 나만 웃고, 나는 웃지 않고 아이들은 웃고.

아이들과 영화 '국제시장'을 본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는데, 아이들은 무덤덤하다.

첫째가 한전에 합격했을 때, 둘째가 의사고시에 합격했을 때, 아이들은 웃고 나는 울었다.

웃음이 나오게 하는 사건들은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지만,

울음이 나오게 하는 사건들에서는 웃음을 지을 수가 없다.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순간에 박장대소하며 웃지만,

더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되면 엉엉 울게 된다.

감동이 되고, 공감이 되고, 슬프고, 아프고, 안타깝고, 억울하고, 속상하고,  고독하고, 낙담하고,

외롭고, 좌절하고, 참담하고, 죽을 만큼 힘들 때 눈물이 흘러내리지만 결코 미소라도 지을 수 없다.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하고 아름답고 시원한 감정은 울음이다.

울면서 흘러내리는 눈물보다 깨끗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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