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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세 Dec 14. 2020

마음껏 눈물을 흘리자 4

언니와의 약속

"엄마가 언니한테 신경을 더 많이 쓰니까 서운한 것은 없었어요?"

"서운해요. 그래도 언니가 혼자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으니까"

이 소녀의 언니는 지적 장애인.

언니를 위해 서운한 것도, 힘든 것도 묵묵히 참고 견뎌왔던 13살 어린 소녀는

끝내 눈물을 글썽인다.

어릴 때 언니만 챙겨주는 엄마를 보면서 서럽고 서운했던 마음,

조금 더 자라면서 언니의 장애를 알고 언니가 불쌍하다고 느껴지는 마음,

언니를 챙겨주기 시작하면서 언니의 마음을 이해하는 마음,

장애 예술인인 언니를 따라다니다가 국악을 접하게 되고 언니와 함께 무대에 서면서 즐거웠던 마음,

언니가 함께 하지 못하고 처음으로 혼자 무대에 서게 되어 떨리는 마음,

온 가족이 자신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와 줘서 고마운 마음들이 눈물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흘러내린다.


소녀는 청아한 목소리로 장윤정의 '약속'을 부르고

'잊지 말아요. 가슴 아픈 사랑이 슬퍼하는 날엔 내가 서 있을게요'라는

가사가 흐를 때 언니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른다.

자신이 혼자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서 어린 동생에게서 엄마를 빼앗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

자신의 장애를 알고 자기를 이해해주며 챙겨주는 어린 동생에게 고마운 마음,

장애인인 언니와 함께 다니는 것이 창피할 수도 있을 텐데, 아무렇지도 않게 함께 무대에 서주는 동생이 고마운 마음,

동생이 함께 해주어서 힘이 되었고, 기뻤고, 좋았던 마음,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홀로 무대에 서 있는 동생이 안쓰럽고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언니의 조용히 흘러내리는 눈물에, 어린 소녀의 떨리는 목소리에, 

심사위원도, 대기실에 있는 참가자도, 그 소녀들의 엄마도, 나도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노래가 끝나고,

8도 올스타의 별들이 반짝일 때,

어린 소녀는 입을 막고 울음을 왈칵 터뜨리고 말았다.

티브이 화면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폭풍 눈물을 흘리고, 

조용히 눈물만 흘리던 내 입에서 우는 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트롯 전국체전을 보다가 이송연의 사연에, 표정에, 노래에, 고운 마음에 젖어 들어 엉엉 울고 말았다.

누가 울라고 한 것도 아니고, 울리려고 작정하고 달려든 것도 아닌데,

TV 화면에 비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함께 울었다.


눈 가에 맺히는 눈물, 조금씩 흘러내리는 눈물, 왈칵 쏟아지는 눈물, 펑펑 터져버리는 눈물.

눈물의 양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함께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 중요하다.

눈물을 흘린 모두는 마음이 뻥 뚫렸고, 엉켜왔던 많은 것들이 풀렸으며, 아프던 가슴이 나았을 것이다.

한 방울의 눈물 속에도 많은 사연이 있고, 엄청난 힘이 있음이 증명되었다.

13살 어린 소녀를 공감하던 수많은 어른들이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


웃음은 절대 줄 수 없는 울음의 능력이다.

함께 울어 준다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는 특별한 축복이다.

함께 울어 준다는 것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공감한다는 의미이다.

함께 울어 준다는 것은 내 마음에 악함보다는 선함이 더 많다는 반증이다.

함께 울어 준다는 것은 언젠가 나와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을 얻는 것이다.

함께 울어 준다는 것은 내 마음의 응어리도 함께 풀어지는 기적을 경험하는 것이다.

함께 울어준다는 것은 내가 그 사람을,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슬퍼서 울고 있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는 함께 울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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