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그냥 걷기에서 명상하며 걷기로
처음엔 그냥 걸었다. 그냥. 무작정. 아무 목적도 생각도 없이.
그런데, 그렇게 한두 달을 무작정 걷다 보니,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지 걷는 동안만 기분이 나아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평소보다 깊은 잠을 자고 있다는 걸 깨달았고, 일상 속의 사소한 자극에 덜 예민해진 자신을 알아차렸다.
감정이 훅 올라오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 강도가 전보다 약해졌고, 회복 속도도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걷는 시간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마치 하루의 쉼표 같았고, 누군가에게 나를 잠시 맡기는 듯한 안도감마저 들었다.
걷는 시간 동안은 ‘나’라는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걷기 시작한 지 세 달도 넘어서 였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게 혹시 명상일까? 걷는 명상?’
머릿속을 비우고 싶은 마음, 편안함, 감정의 정리…
이 모든 것이 명상이 주는 효과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궁금해졌다.
그래서 검색창에 ‘걷기 명상’이라는 단어를 처음 입력해 보았다.
생각보다는 ‘걷기 명상’이라는 개념이 생소한 건 아니었다. 걷기 명상을 소개하는 책도 있었다. 틱낫한 스님의 걷기명상법부터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마인드풀 워킹’까지, 그리고 유튜브, 블로그 등 이런 저런 참고할 만한 자료들이 꽤 있었다.
이들이 소개하는 걷기명상 실천 루틴을 따라 해보기도 했고, 걷기와 호흡, 발걸음과 인식, 시선과 마음의 방향성 등도 참고했다. 생각보다 걷기명상은 단순한 ‘산책’이 아니었다.
이와 동시에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기 위한 실험도 계속했다.
아침에 걸을 때와 저녁에 걸을 때,
빠르게 걸을 때와 천천히 걸을 때,
음악을 들으며 걸을 때와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그때그때의 마음 상태와 주변 환경에 따라 다양한 방식들을 시도했고,
조금씩 나 자신만의 걷기명상 틀이 잡혀가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이 과정을 루틴으로 만들고 싶었다.
매번 즉흥적으로 걷기보다는,
‘오늘은 어떤 마음으로, 어떤 테마로 걸을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그에 따라 걸음을 내딛는 것이 훨씬 의미 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만의 ‘걷기명상 주제’를 정리해보기로 했다.
감정 다루기, 몸의 감각 깨우기, 타인과의 관계 돌아보기,
자연과 연결되기, 삶의 방향 바라보기 등
내가 걷는 동안 마주하게 되는 내면의 흐름들을 주제별로 정리하고,
그에 어울리는 실천문, 질문, 호흡법을 조금씩 붙여 나갔다.
그렇게 무작정 걷기는
의식적인 걷기, 주제 있는 걷기,
그리고 명상의 한 방식으로서의 걷기로 바뀌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