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걷기와 명상, 움직임과 마음챙김
명상은 흔히 ‘멈춰 있는 시간’으로 여겨진다. 눈을 감고 앉아 호흡에 집중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본질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지금 이 순간에 깨어 있는 것’에 있다. 그 점에서 나에겐 ‘걷기’가 훌륭한 명상의 수단(?) 될 수 있었다.
걷기는 가장 일상적인 활동이면서도, 우리 사람에게 가장 익숙한 리듬이다. 몸을 움직이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이 단순한 행위는 호흡과 연결되고, 시선과 감각을 자연스럽게 깨운다. 명상이 고요한 내면의 탐색이라면, 걷기명상은 그 고요를 움직이는 발걸음 속에서 찾아가는 실천이랄까.
결국, 걷기명상의 핵심은 ‘마음챙김(mindfulness)’이다.
지금 이 순간의 내 호흡, 발의 움직임, 발바닥이 땅에 닿는 감각, 주변의 소리와 냄새, 바람의 흐름… 그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이며 걷는 것', 그것이 곧 걷기명상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걷기는 그저 ‘이동’이다. 어디론가 가기 위한 수단. 하지만 걷기명상에서는 목적지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걷고 있는가’이다. 발걸음 하나하나에 의식을 두는 순간, 걸음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깨어 있는 삶의 표현이 된다.
걷기명상은 단순한 정신 수련을 넘어 신체적, 심리적, 정서적인 치유를 함께 가져온다. 내가 체험하게 된 걷기명상의 효과는 우선, 정신적 안정이었다. 반복적이고 리드미컬한 움직임은 과도한 사고의 흐름을 잠재운다. 생각의 소음이 줄어들면서 마음은 한결 고요해진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효과는 감정의 정화였다. 억눌린 감정이 걸음과 함께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흘러갔다. 화, 슬픔, 불안 같은 감정이 마찰 없이 녹아내렸다.
이러한 감정의 정화는 자연스레 자기 성찰로 이어졌다. 반복적인 걸음 속에서 내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 생겼고, 생각이 정리되고, 방향이 보이며, 나에게 솔직해졌다.
당연히 걷기라는 가벼운 유산소 운동으로서의 효과도 있다. 규칙적인 걸음은 뇌에 산소를 공급하고, 신체 감각을 회복시킨다. 사실 유산소 운동 효과는 크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하루 4~8km (조금 많이 걸을 때는 12km)의 걷기 후 맞이하게 된 깊고 평안한 수면의 시간은 그 자체가 위안이었다.
걷기명상. 그것은 움직이며 깨어나는 명상이며, 일상의 속도를 늦추고 내 자신과 연결되는 가장 쉬운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