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현타를 마주하는 법

by Mika

내가 왜 산을 오르는지를 모른 채 산을 올랐던 과거에 현타가 왔던 적이 있었다. 그 현타를 겪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왜 산을 오르는지, 어떤 산을 오르고 싶은지를 정의해 보게 되었다. 정의 후에도 물론 그 산이 중간에 바뀌거나 내가 쉬어가기도 한다.


그래도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산을 오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이고, 그래서 “자발적으로” 산을 오르는 선택을 하고, 더 이상 이에 현타가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 페이스대로 산을 올라가면서 같이 산을 올라가는 사람들을 깡그리 무시했구나를 깨닫고 현타가 왔던 적이 있었다.


주변의 꽃과 나무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오르는 길을 풍성하게 만들고, 다음 산은 어디를 오를까 같이 계획을 세울 때, 이 산뿐 아니라 다음 산도 같이 할 수 있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자 수학 방정식을 풀거나 집중하여 글 한 편을 써내는 것과 같은 원래 좋아하던 시간 외에, 내 앞에 앉은 사람의 세계에 완전히 빠져들며 같이 뭔가를 계획하는 그 시간을 너무나 좋아하게 되었다.


이 산을 오르는 것이 맞을까, 바닥부터 이렇게 올라가는 것이 맞나, 현타가 오는 시간을 헤쳐나가고 있다. 앞서 두 현타가 지나간 뒤에 얻었던 것과 같은 깨달음을 얻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동안 나는 이 길로 정상에 갈 수 없다는 걸 이미 알면서도 그 산을 오른 적들이 있었다. 이 산을 우선 오르고 나면 그 담엔 백두산이든 에베레스트를 올라낼 수 있지 않을까의 심정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에베레스트를 오른다는 지향점을 가지고 1일 차/2일 차를 계획하고, 그래서 최종적으로 정상에 올라보자 이런 접근법을 취할 것 같다. 내가 지금 이걸 왜 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뭘 목표하는지가 흔들리지 않아야, 더 이상 현타가 오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현타를 맞는 상황들을 하나하나 줄여내는 것, 혹은 누군가의 액션으로부터 내가 현타를 받지 않는 것, 그게 내가 최근의 현타들을 마주하며 생긴 욕구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신뢰하는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