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아스라하게만 느껴지는 20대 시절, 내 연애 경험은 보잘것없었다. 횟수가 손가락 꼽을 수준이었고, 대부분의 만남이 첫 대면으로 끝났다. 서너 번까지 이어지면 행운이었다. 자신감 없고 내성적인 내 기질 때문이었다. 1년 가까이 사귄 적이 한 번 있었지만, 그마저 나의 확신 없고 어정쩡한 태도로 실패했다.
서른이 되니 결혼을 전제로 하는 몇 개의 소개팅만이 있었을 뿐, 연애 기회 자체가 생기지 않았다. 지금으로서야 낯선 것일 테지만 당시에는 남자가 서른이 넘으면 노총각으로 취급당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서른넷에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만난 사람이 아내다.
아내와의 만남은 이전과는 달랐다. 만남이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 즐거웠고, 만남을 이어갈수록 무언가를 자꾸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커져만 갔다. 이상하게도 없던 자신감 마저 생겨났다. 무엇보다 자유로움이 나를 지배하는 느낌이 들었다. 답답했던 직장 일이 즐거운 것이 되었고 일상이 여유로워졌다. 눈떠보니 능력자가 된 격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사랑은 나를 자유롭게 한다는 걸.
결혼하니 사랑할 대상이 늘어났다. 아내 외에 애들이 추가된 것이다. 아들 둘을 키우는 일은 전업주부인 아내 몫으로 돌아갔다. 어깨너머로 보는 육아는 전쟁이었다. 일을 핑계로 가끔 보는 애들이 내게는 기쁨이고 즐거움이었지만, 아내는 사랑이 내는 힘으로 버티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진짜 힘든 것은 따로 있었다. 인간의 사랑이 완전할 수는 없는 법. 사랑을 하면 할수록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내 생각을, 내 태도를 강요하게 되는 관성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큰애가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우리 부부는 수학에 소질이 있던 큰애를 학원의 과학영재반에 넣었다. 그로부터 몇 달 지난 어느 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들의 모습이 하도 축 처진 느낌이 들어 물어보니 눈물을 글썽이며 “밤늦게까지 학원을 왜 다녀야 하는지 자기는 도무지 모르겠다”라고 하는 것이다. 아차 싶었다. 저 잘되라고 시킨 과외가 애를 궁지에 몰아넣은 것이다. 그 자리에서 학원을 그만두게 했다.
이 사건 이후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아들에게 공부나 생활 태도를 지적할라치면 아내는 질색하는 표정으로 눈치 주곤 했다. 아내는 자기의 집착이 요술을 부리지 않도록 스스로 엄청나게 경계하고 있음을 눈치 없는 내 눈에도 보였다. 얼마 전 아내에게 아이 키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그거였냐고 확인해 보니 그렇다 했다.
▲ 아이들을 다 키워보니 이제야 사랑을 알 것 같다. 사랑하는 이를 자유롭게 하면 나 또한 자유로워진다는 걸. ⓒ 정승주
누구든지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사랑하게 되면, 사랑은 아낌없이 주되 자유롭게 내 버려두는 게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알 것이다. 진정한 자유인의 삶을 살았던 스콧 니어링은 자서전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손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중 시 하나 - ⌜아이들에 대하여⌟ - 의 일부를 인용한 대목을 소개했는데, 나에게도 그것은 늘 경계의 나침반이 되어 주고 있다.
당신의 자녀들은 당신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그들은 생명의 아들이고 딸입니다.
그들은 당신을 통하여 왔지만
당신에게서 온 것이 아닙니다.
또한 당신과 함께 있으나 당신의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으나 생각을 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의 생각이 있으니까요.
당신은 그들의 몸을 가둘 수는 있어도 마음을 가둘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은 미래의 집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으로서는 꿈속에서조차도 방문할 수 없는 그런 곳에 말입니다.
당신은 그들처럼 되고자 할 수는 있겠지만 그들을 당신처럼 만들려고는 마십시오.
왜냐하면 인생은 과거로 가는 것이 아니며 어제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콧 니어링 지음, 김라합 옮김, <스콧 니어링 자서전>, 실천문학사, 2000, 56쪽)
철이 든 걸 넘어 삭은 나이가 된 나는 이제 집착을 버리는 데 힘쓰고 있다. 지난봄 오피스텔을 얻어 독립해 나가는 큰 애에게 우리 부부는 삼 일에 한 번은 안부 연락하라 했었다. 아내보다 불안이 많은 나는 처음 얼마간에는 때가 되어도 연락이 없으면 안절부절 몰라 했었다. 이제는 한 주가 지나도 괜찮다. 흔히 하는 말로 자식이 다 자라면 정을 떼주는 게 사랑이라 했는데 나름 잘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고 보니 이제야 사랑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사랑하는 이를 자유롭게 하면 나 또한 자유로워진다는 걸. 사랑은 온전히 자유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