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에게 꼼짝 못하며 산다. 결혼하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부모님 집에 삼 년 넘게 얹혀살았다.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에 아내에게 더 잘하려 했지만 그게 이유는 아니다. 지금 내가 은퇴한 처지라서 그런 건 더더욱 아니다. 살아오며 아내의 삶에서 나오는 태도와 지혜에 하나둘 수긍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 있었다.
시작은 내 공부 때문에 가족 모두 프랑스에서 생활하던 초기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큰애가 유치원에 들어간 지 며칠 되지 않아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폐렴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던 때다. 의사는 병증이 심해 일주일 정도 입원이 필요하다 했다. 부모라도 밤에는 병실에서 아이와 같이 있을 수 없지만, 아내는 아이가 낯선 외국 생활에서 적응하는 단계라 심리적 불안이 심하다며 간호사에게 통사정했다. 겨우 허락을 받아낸 아내는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하며 큰애를 간호했고, 결국 사흘 만에 조기 퇴원할 수 있었다. 당시 사흘 낮밤을 오로지 애에게 헌신하는 아내를 보며 엄마라는 존재에 대단함을 넘어 경외심을 느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유학을 마치고 복직하여 열정적으로 일하던 때다. 내 직장은 공공기관으로, 당시 기관장은 전제 군주처럼 독단적인 데다 직원을 노비 부리듯 하는 사람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은 간부는 수시로 교체됐고, 모멸감을 견디지 못한 일부 직원은 사표를 내고 스스로 조직을 떠나기도 했다. 간부든 일반 직원이든 모두 불안감에 떨었다.
그러다 임기가 몇 달 남지 않은 어느 날, 그가 연임할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단순히 추진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연임이 유력하다는 것이다. 이건 아니다 싶어 몇몇 직원들이 연임을 반대하는 건의문을 작성하여 감독기관에 제출하자고 뜻을 모았다. 나에게까지 연통이 왔다. 취지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이제 겨우 복직하여 생활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던 나로서는 결정이 간단치 않았다.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가 다시 임명되면 강제 퇴사가 뻔히 예견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며칠을 고민하다 아내에게 털어놓았다. 아내는 조직의 여러 사정을 꼬치꼬치 캐묻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돈 버는 기계도 아니고 어떻게 돈벌이만으로 직장에 다녀요? 한두 해도 아니고. 당신 생각대로 해요.”
나는 아내의 말에 용기를 내어 서명에 동참했다. 건의가 받아들여졌는지 결국 그 기관장은 연임되지 못했고, 다행히 나는 계속 다닐 수 있었다. 후에 아내에게 걱정되지 않았냐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아내는 사실 속으로는 떨려 죽을 뻔했다고 털어놓았다. 나를 이해해 주고 배려하는 마음에 그저 고마웠다.
또 있다. 정년을 몇 년 남기지 않은 때다. 마흔 넘어 얻은 둘째 때문에 은퇴하더라도 새로운 직장이나 일을 더 찾아봐야지 않나 싶어 갈등하는 내 모양새를 보고 아내는 일에 대한 집착이라 타박하며 말했다.
“정년까지 돈 번 것만으로 당신은 의무와 책임을 다했어. 돈이 조금 부족한 게 오히려 아이를 건강하게 해주지 않을까 싶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사는 것도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아. 너무 무리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 은퇴한 나는 돈은 조금 부족해도 아내와 마음 가는 대로 나들이하고 산책하며 여유를 한껏 즐긴다. ⓒ 정승주
아내의 조언대로 나는 ‘명함 없는’ 은퇴 생활을 택했다. 내가 퇴직한 요즘 아내는 자기를 합리화하려는 건지 예비 은퇴자 남편 때문에 고민이 많은 친구나 동네 지인을 만나면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 이렇게 말해 주곤 한단다.
“정년까지 돈 번 남편에게 더 돈 벌어오라 하면 그건 절벽에서 미는 것과 같아. 새끼 사자야 독립심을 키우기나 하지. 환갑 넘은 남편이 새끼 사자도 아닌데.”
지금 나는 좋아하는 책을 맘껏 읽고 글도 쓰며 자유롭게 산다. 돈은 조금 부족해도 아내와 마음 가는 대로 나들이하고 산책하며 여유를 한껏 즐긴다. 뒤늦게 그리는 재주가 있음을 알게 되어 그림도 그린다. 무엇보다 돈과 명예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어 너무 좋다. 전적으로 아내 덕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인생에서 아내와 견줄 만한 친구가 없다. 삶에서 오는 절망, 불안, 고단함 등 모든 상념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동반자는 아내뿐이다. 내가 여자를 잘 만난 복 많은 사내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팔불출임을 드러내면서까지 내가 아내를 자랑하는 이유이자 복종하며 살아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