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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옹 Nov 17. 2024

인생에서 가장 좋은 때

“우리 인생에서 가장 좋은 때는 해야만 하는 일에서 퇴직한 후 하고 싶은 일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할 때다.”

(이서원 지음, 「오십, 나는 재미있게 살기로 했다」, 나무사이, 2024, 35쪽)  



         

나이 들면 사람들은 대개 떠나보낸 아쉬움 때문인지 젊은 시절을 인생에서 가장 좋은 때로 꼽는다. 나는 아니다. 젊은 시절이 화양연화(花樣年華)였다는 느낌보다는 의무감으로 하는 일에 그저 지치고 힘들었던 기억이 앞선다. 

    

저자의 문장을 마주한 순간 스물네 살 때 어느날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병역의무를 마치고 복학한 때였다. 공부가 싫었지만 먹고살 일이 걱정돼 책상머리에서 떠날 수도 없어 뒤척이다, 불현듯 ‘쓰고 싶다’는 욕구에 사로잡혀 전공책을 밀치고 두 쪽 남짓 분량의 습작 글을 순식간에 썼었다. 평범한 날 오후에 있었던 지극히 소소한 사건이었지만 그것은 나를 참으로 기분 좋게 만들었고, 기억은 가슴 내밀한 곳에 각인됐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글쓰기가 좋아하는 일임을 확인했지만, 공부를 포기할 순 없었다. 그때 내게 공부는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학업에 이어 삼십여 년을 견뎌낸 직장 일도 좋아하는 일이었는지 의문이다. 마음 한편은 여전히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는 쪽으로 기운다. 


은퇴해서야 비로소 나는 미루어두었던 글쓰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십 년을 돌아 좋아하는 일을 다시 마주한 셈이다. 그러니 누가 뭐라 해도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때임이 분명하다. 내 나이 육십하고도 넷이 넘었지만. 



ⓒ 정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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