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은 우리가 결국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만약 이해할 수 있다면 삶은 상당히 단조로워질 것이다. 우연은 우리가 예기치 못한 일들을 경험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혼란 속에서 다채로운 미래의 가능성에 희망을 걸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플로리안 아이그너 지음, 서유리 옮김, 「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 동양북스, 2018, 268~269쪽)
불교의 연기법(緣起法)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원인과 결과의 세계로 규정한다. 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존재 그리고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원인이나 조건에 기댄 인연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 세계에서 우연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국어사전은 우연을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이 뜻하지 않게 일어난 일’로 설명한다. 우연은 연기법에서 벗어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우연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 심지어 양자이론, 진화론 그리고 카오스이론에서 보듯 현대과학에서 우연은 중요한 몫을 해낸다.
연기법의 세상이 틀린 걸까. 아니다. 우리가 알아차릴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인연이 우연인 거다.
우연이 내게 일어났을 때 결과는 좋거나 나쁘거나 중 하나다. 행운 아니면 불운이다. 내 경험칙으로는 대개 나쁘다. 그래서 우연은 반갑지 않은 손님이기 일쑤다. 난데없이 나타나 편안한(?) 관성의 일상을 깨뜨려 삶을 흔들어 대서다.
한데, 곱씹어 생각해 보면 우연은 희망이다. 나쁜 일이면 당연히 희망을 줄 테고 좋은 일이면 더 큰 희망을 줄 테니 말이다. 알 수 있는 인연만 존재한다면 그것이 바로 희망 없는 세상일 게다. 삶에서 우연은 희망이자 축복임이 분명하다.
ⓒ 정승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