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잎이 나고 꽃이 피는 춘풍에 무상(無常)을 묻지 않는다.”
(이진경 지음, 「불교를 철학하다」, 한겨레출판, 2016, 42쪽)
20년 넘은 임플란트 치아가 말썽을 부려 결국 뽑았다. 한 달여 남짓 잇몸과 신경치료를 거쳐 브리지 시술로 마무리했다. 이제 살만하다 싶었는데 귀에 문제가 생겼는지 이명 증상이 한 주 내내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완화돼 마음이 놓였지만, 그것도 한순간. 엊그제부터는 봄싹 올라오듯 피부알러지가 고개를 내민다. 탈 없는 날이 드물다.
사는 동안 평안하고 행복한 시간만 있으면 좋으련만 몸에서건 마음에서건 크고 작은 고통이 끊이지 않는다. 고생길 끝에 희망이라도 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삶 너머에는 죽음만이 도사리고 서 있다. 이래서 동서고금 모두 인생은 덧없다고 하나 싶다. 어쩔 수 없이 무상(無常)의 감정이 슬그머니 마음에 들어와 앉고, 내 처지를 일깨워주기라도 하듯 저자의 문장이 죽비처럼 그 마음을 때린다.
맞다. 젊었을 때는 힘든 순간에도 삶과 세계에 대한 탐구 의지로만 충만했을 뿐 내 삶에 대해 덧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인생무상이 지식과 이해 차원의 문제였지 내 실존의 문제라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제법 긴 세월을 몸과 마음으로 살아낸 삶의 두께 덕에 고통과 죽음은 삶의 필요조건이자 살아 있음의 댓가이고, 그로 인한 덧없음은 ‘처절하게 아름다운’ 인생 꽃을 피우게 하는 뿌리임을. 해서 나는 아직도 무상(無常)과 완전한 동행을 온전히 해내고 있진 못하지만 먼 옛친구처럼 지낼 정도는 된다. 다행이고 감사할 따름이다.
ⓒ 정승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