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8살 안되게 선생님한테 말 좀 해줘!
어느 날 문득 아이가 말한다.
" 엄마, 나 8살 되기 싫어.
엄마가 선생님한테 말 좀 해줘. 알았지?"
갑작스러운 아이의 고백에 한바탕 웃었지만 문득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 8살이면 이제 멋진 초등학교 엉아 되는 건데, 왜?"
" 그냥 엉아 되는 거 싫어. 그러니까 얘기 좀 해줘~"
그렇게 아이는 나에게 나름의 신신당부를 했다.
한국 나이로는 아직 6살. 늦은 생일 탓에 최근 만 5세가 된 아이가 7살도 건너뛰고 8살이 되기 싫다니.
무슨 의미일까?
물론 아직 나이를 먹어가는 것도 그 나이를 나타내는 숫자에 대한 감각도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기에 그저 감정적으로 아이의 언어를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엉아가 된다는 것이 싫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어렸을 적 친구집에 집에 놀러 갔을 때가 떠올랐다. 친구에게는 오빠가 하나 있었는데 엄마가 오빠를 무지 귀하게 대하는 나머지 친구의 서운함이 한눈에 느껴졌다. 아들~ 우리 아들~ 하며 살갑게 아들을 부르는 친구 엄마는 늘 친구에게 오빠를 위한 무언가를 심부름 시키시곤 했다.
그런 내가 어느샌가 아이를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아들~ 우리 아들~ 하루에도 몇 번씩 뽀뽀를 해대며 사랑한다고 고백하는데 그마저도 부족할세라 틈날 때마다 사랑을 표현했다. 아이도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알고 곁에서 배운 덕에 그 누구보다 사랑한다는 표현을 잘하고 밝게 잘 웃는다.
하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조금씩 고민이 생겼다.
'나의 과도한 관심과 사랑이 혹시 아이의 자발적인 성장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까?'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자 돈도 시간도 최대한 아끼지 않는 행동으로 인해 아이가 절제와 거절의 상황에서 대처하는 걸 어렵게 만들지 않을까?'
'이런 엄마의 관심과 사랑이 너무 좋은 나머지 엉아가 되면 그를 받지 못할까 봐 미리부터 크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아이 자신이 아니기에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요즘 들어 아이가 부쩍 커감을 느끼니 아이가 하는 말 한마디에도 그 의도와 감정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아이의 말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아이가 커가는 만큼 엄마로서의 나도 성장해 간다.
우리 엄마도 그랬겠지?
엄마란 그런 존재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