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나의 생각

by 감성소년


1919년 러시아혁명 이후 사회주의가 급속도로 퍼지게되었다. 당시 사회주의는 계급, 국가에 상관없이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유토피아적 사상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한국에도 역시 사회주의가 퍼지게 되었다. 그 결과 한국에도 공산당이 창설되게 되었는데 이른바 상해파 고려공산당과 이루쿠츠크파 공산당이 그 것이다.

오늘은 이 들 사회주의계 중 민족주의적 성향을가진 상해파에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두 계열의 차이는 민족주의계열과의 연대가능 여부와 사회주의 이념에서 민족혁명, 즉 독립을 좀 더 추구하느냐 아니면 계급혁명을 좀 더 추구하느냐의 차이였다 민족혁명을 좀 더 중시한 이동휘계 상해파 고려공산당은 임시정부계열과 연대하게 된다. 반면 이루쿠츠크파 공산당은 임정과의 연대도 부정하며, 독고다이식 계급혁명노선을 가게된다.


사실 이동휘계열도 임시정부계와 연대를 하다가 결국은 이승만의 국제연맹 위임통치 청원사건을 계기로 임정과 결별하고 다시 연해주로 와서 무장투쟁 중심의 임시정부를 계획했지만,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EB%8B%A4%EC%9A%B4%EB%A1%9C%EB%93%9C_(45).jpeg?type=w1 상해파 고려공산당의 수장이었던 이동휘. 그는 자신이 '나는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라 말할 정도로 사회주의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이 들의 활약이 조금 아쉬운 것은 사회주의계열이 굉장히 이상적인 이념을 추구하였기에 젊은 이들의 혈기를 끌어올리는데는 성공했지만 사상, 노션을 두고 끊임없이 분열했다는 것이다. 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는 이후 광복이 되자, 울부짖으며, 우리 사회주의계열은 분열로인해서 독립운동에 기여를 거의하지못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이 정말 무의미한 것일까. 그렇지않다고 본다 결과론적으로 김씨일가의 삼대독재로 귀결되어 너무 슬픈 역사가 되어버렸지만 20년대 30년대의 독립운동사에 있어서 사회주의계열을 빼놓고 이야기하면 할 얘기가 없어진다. 연안파의 김두봉계, 조선의용대, 의열단계열의 김원봉계며 지금은 625전쟁의 원흉이지만 당대 독립운동가였던 박헌영에 이르기까지 사회주의계열은 민중들의 독립의식을 고취시키기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 부분은 우리가 인정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결국 독립운동 역시 자금이 있어야 진행될 수 있는데 소련은 소수민족자결주의를 외치며 직접적인 자금지원등의 소수민족에대한 지원이있었기때문에, 약소국이자 식민지였던 식민지조선의 민의 입장에서는 직접적인 지원이오는 소련의 지원을 받기위해서라도 그 들의 사상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기때문이다. 반면 당시 미국의 윌슨이 내세운 민족자결주의는 일차대전 패전국가의 식민지에대한 자결주의였으며, 이것은 상징적인 것일 뿐, 실제로 식민지에대한 미국의 지원은 거의 전무하다 싶이했다. 오히려 미국은 국제정세에대해 무간섭정책 (당시 공화다믜 외교정책)으로 영국의 splendid isolation정책과 일맥상통하는 고립주의 정책으로서 자국의 이익 확보에 전념했을 뿐 식민지의 독립에대해선 관심이 없었기때문에 당대 조선인입장에서는 직접적인 지원이오는 소련의 손을 빌리기위해서라도 사회주의자가 되는 것이 당대 트렌드이기도했다. 그렇다고 극단적 일명 꼴통 공산주의자까지 옹호하고 싶지않다.



이전 625전쟁영웅이던 백선엽의 국립현충원 묘비안장 문제를 두고 갈등했을 때 그의 관동군 이력이 큰 화두가 된 적이 있다.







%EB%8B%A4%EC%9A%B4%EB%A1%9C%EB%93%9C_(44).jpeg?type=w1 백선엽.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직접 만주에서 독립군들을 대상으로 전투를 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대한 반성은 없었고, 그저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말을 했다.



그때 보수패널로 나왔던 이가 했던 말이 '당시 만주에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는 좌파계열이고 지금의 북한 계열이니 그 들은 빨갱이요, 그 빨갱이를 처단한 백선엽의 공을 우리는 기억해야한다'는 기적의 논리를 기억한다. 근데 우리가 생각해보아야할 것이 있다 . 이렇게 나눠버리면, 모든 것을 이념으로 나눠버리면 우리의 역사, 문화가 획일화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당시 좌익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이 지금의 북한 3대세습을 찬성했을까? 그 들은 대부분 계급, 민중혁명을 지향함과 동시에 김원봉과 같은 경우 민족혁명 즉 독립을 최우선시 했다는 것은 그의 조선민족혁명당 당강령이며, 그가 운영하였던 조선정치군사간부학교에 설립 강령에도 분명히 나와있다 김원봉은 보통선거,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자고 주장했고, 대표적인 민족주의자 김구와 갈등하면서도 그의 학교에 끊임없이 김구를 초빙하는 모습이나 김구세력과 연대를 하는 모습은 절대 그 들이 일명 수꼴적인 사회주의자가 아닌 민족적인 성향이 강했다는 것을 알 수있고, 분명히 그가 조선독립을 계급혁명보다 최우선시 했음을 알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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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단지 지금 북한정권이 공산주의 계열이고 과거 김원봉등 사회주의계열도 같은 계열이니 그 들을 토벌한 백선엽은 영웅이다는 논리는 당대의 맥락을 전혀이해하지못한 전형적인 이데올로기적 인식의 소산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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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상해파 고려공산당의 수장 이동휘는 자신은 사회주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 정도였으니 당시 사회주의계 독립운동가 중에서는 사회주의를 민족독립 혁명의 수단으로 사용했던 이 들이 많았을거라 생각한다 .


20180410103222886568.jpg?type=w1 임시정부의 요원들. 모든 독립운동가가 사회주의자는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는 사회주의 운동가였다. 대표적인 사회주의 운동가인 김원봉(오른쪽 맨 하단)



아무쪼록 나는 이 글에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에대한 나의 생각을 이야기해보았다. 우리가 사회를 하나의 기준을 두고 생각하면 인식의 폭이 너무나 좁아진다 이런 맥락에서 꽤 많은 사회주의계 민족독립운동가에대한 인식이 부디 재고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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