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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저 Jun 29. 2023

피 끓는 청춘

피 끓는 청춘이란 자기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때를 의미한다. 나 스스로도 내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모르는 것. 그러나 내 몸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는 것. 잠시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정에 휘둘리는 것. 머리보다 몸이 움직이는 데로 향하는 것이 피 끓는 청춘들의 특권이라면 특권이다. 나의 어린 시절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철없고 행복했던 시절, 겉모습은 다 컸으나 아직 그 내면에는 어린아이가 남아있는 시절 말이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해 나갔다. 친구들도 생기고, 자신감이 붙으면서 무모함도 나를 찾아왔다. 국제학교라 해서 한국의 학교와 다를 바는 없었다. 선생님들은 모범생을 좋아했고, 모범생에게 한 번의 일탈은 귀여운 장난에 불과했다. 선생님들은 모범생들의 귀여운 장난을 아무렇지 않게 감싸줬고, 평소에 태도가 불량하던 학생들에게는 사소한 것에도 엄한 벌을 내렸다. 평소 공부를 열심히 해 놓은 것을 면피 삼아, 나는 친구들과 종종 학교 규칙을 깼다.


가장 흔한 교칙위반은 학교 담장을 넘는 것이었다. 우리 학교는 한국의 고등학교들과 다르게,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 즉 11학년과 12학년 때는 대학교처럼 수업을 선택해 수강할 수 있었다. 나만의 수업 스케줄을 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율적인 수업 일정에 맞춰 나는 남들보다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 이른 하교를 기다렸다.


그러나 희망을 품은 나의 잘못일까, 학교에서는 보안상 정규 수업시간이 끝나기 전에 교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오후를 도저히 버틸 수 없어 친구들과 슬금슬금 담장을 너머 학교 밖으로 빠져나갔다. 우리 학교 담장은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지 않았다. 그도 그럴 듯이, 캠퍼스가 너무 넓어 경비원들은 차나 버스가 들어오는 정문만을 지키고 있었다. 그 외에는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3~4m의 높은 펜스가 무방비하게 우리를 기다렸다. 나와 친구들은 서로를 도와가며 위에서 잡아주고 밑에서 올려 주고를 반복하며 담을 넘었다. 담을 넘으면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친구의 오토바이였다. 그 나라에서 오토바이 10대에도 면허를 딸 수 있었다. 덕분에 나와 친구들 여럿은 오토바이 하나에 겹겹이 앉아 유유히 학교를 빠져나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외출은 늦은 오후가 아닌 이른 아침이었다. 등교 후 첫 수업이 갑작스럽게 휴강이 되자, 나와 친구들은 또 어디로 놀러 갈지를 고민했다. 참 웃기는 게, 당시 우리 집은 학교까지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10분 전에 집에서 나온 내가, 또다시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이 시간에 집에 들어와도 뭐라고 하실 분들이 아니었다. ‘수업이 휴강 돼서 쉬러 왔어’ 라며 나만의 이유를 대면 이에 수긍하시는 분들이었다.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아직 학교의 정문을 열려 있었다. 지각을 하는 학생들이 더러 있어, 우리 학교는 수업시작 30분 이후까지는 정문을 개방해 놓는다. 지금 나가면 정문으로 당당히 걸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친구들과 함께 유유히 학교를 빠져나왔다.


정문을 지나 집으로 향하던 나는, 친구들과 함께 아침을 먹기로 했다. 당시 우리 집 아파트 1층에는 브런치카페와 수영장, 헬스장이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이른 아침 9시부터 브런치카페에 들어가 각자 프렌치토스트를 하나씩 시켰다. 수다를 떨며 달콤한 프렌치토스트를 먹는데, 외국인 아주머니들 4명이 우르르 들어와 우리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아주머니들은 아주 능숙하게 가방에서 큰 천을 꺼내어 테이블을 덮었다. 그 후 카드를 꺼내 포커를 치기 시작했다. 나는 당시 그 광경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평일 낮 10시에 백인 아주머니들 넷이 식당에 앉아 포커를 치다니. 심지어 포커용 천도 들고 다닐 정도로 열정적이라니. 그 모습이 너무나도 우스꽝스러웠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어린 나에게는 그 아주머니들이 한심해 보였었다. 남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평일 낮에, 한가로이 포커나 치면서 남의 돈이나 따다니,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아주머니들의 소소한 삶의 낙은 그 아침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아침마다 만나며 서로의 우정을 소중히 지켜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진정한 친구를 만나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상대방에게 다 보여주는 것이 나이를 먹을수록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결국 용감한 사람만이 친구를 얻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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