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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닮은 두 여인들

유전자는 정말 무섭다

by 알쏭달쏭

내 얼굴의 가장 큰 특이점은 인디언보조개이다. 우리 엄마 아빠 언니 동생 아무도 없는 데 그게 나에게만 있다. 우리 딸들은 둘 다 인디언보조개가 있다. 유전은 정말 신기하다.


2020년 5월, 코로나로 혼란스러운 시기에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그 사람은 바로 우리 딸 제리였다. 처음 그녀를 본 순간 낯설고 두려웠다. 뱃속에 아이가 생겼을 때부터 엄마였지만 엄마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막상 낳고 나서 아이를 만지고 보고 느끼고 나서도 엄마라는 인식이 되기 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꿈에선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출산해 본 적 없는 그런 나로 나오곤 하는데 꿈에서 깨면 옆에 꼬물이가 쌕쌕거리며 자고 있다. 그러면서 다시 엄마라는 걸 자각하게 된다.

처음 만난 제리의 주먹만 한 얼굴에 눈, 코, 입 있을 건 다 있었다. 작은 몸 안에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장기와 뼈도 있었고 심지어 지문도 있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눈으로 보니 너무 신기했다. 그러면서 '모든 인간이 이런 순간이 다 있었겠구나'라는 생각과, '나도 이랬겠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기사 아저씨, 떡집 아줌마, 교복을 입은 학생들, 우리 아이를 우리 앞에 데려온 간호사까지도 세상에 처음 태어난 날이 있었겠구나.


제리를 만난 첫 날, 산부인과 병실에서 아이를 봤다. 성인 팔뚝만 한 아기가 작은 상자 같은 침대 위에 속싸개 돌돌 말린 채로 누워있었다. 제리는 눈이 부신 듯 겨우 실눈을 뜨다가 뭐가 불편한지 바로 울어버린다. 첫만남은 쩔쩔매고 허둥댔다. 설명을 들은 대로 스푼으로 분유를 떠서 먹여보기도 하고 처음으로 젖을 물려보기도 했다. 이 아이가 뱃속에 있던 아이라니 놀라웠다. 이렇게 생겼었구나


둘째 때는 역시 달랐다. 아무래도 경력자이기 때문에 '한 번에 빠르게 갑시다.'라는 생각으로 능숙하고 빠르게 아이를 낳았다. 애를 처음 봤는데 제리랑 너무 똑같이 생긴 것 아니겠는가? 순간 제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첫째를 봤을 때처럼 당황하거나 낯설진 않았다. 그저 어떤 녀석이 태어난 건지 좀 더 정신을 차리고 관찰했다. 첫째와 다르게 우렁차고 빠른 템포로 우는 걸 보니 확실히 다른 성격의 소유자로 보였다.


아이를 낳고 느낀 점은 생각보다 유전이 결정하는 것이 거의 전부라 할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부모가 가진 요소들을 아이는 모두 닮아있었고 외모뿐만 아니라 생각, 기질, 예민한 정도, 부주의함, 수면 습관, 치아의 강도, 키, 체형, 지능 등 새로운 것은 거의 없을 정도로 전부 물려받았다고 볼 수 있었다.


엄마가 나는 순하고 착했으며 울지도 않았다고 했었다. 제리도 그랬다. 그러나 그런 나의 성격만 있는 건 아니었다. 남편의 예민함과 세심함과 분석적인 성향도 여러 스푼 추가되었다. 한 가지 성향만 있는 게 아니라 상반된 성격이 입체적으로 있는 사람이 탄생한 것이다.


나와 남편의 부딪히는 부분이 제리와 나의 부딪히는 부분과 같았다.


"엄마 킥보드 세울 때 똑바로 세워야지. 아무렇게나 세우면 어떻게 해"


"엄마 거꾸로가 아니라 반대로 신은 거겠지. 거꾸로랑 반대로는 다른 말이야."


"엄마 운전 연습했어야지. 연습을 안 하니까 아직도 초보운전이잖아."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깜짝깜짝 놀란다. 아마 남편이 심어놓은 스파이인가 보다. "엄마 옆에서 엄마가 아무렇게나 하는 거 있으면 참 교육을 하거라"하고 시킨 게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둘째는 정말 아무렇게나 하는 아이가 나왔다. 제리는 그림을 그릴 때 민트색을 만들기 위해 여러 색을 조금씩 섞어가며 세심하고 조심스럽게 색을 만들어 천천히 붓질을 하는 반면 티커는 한 가지 색으로 전체를 아무렇게나 색칠하고 다했다고 했다. 붓이 망가질정도로 힘을 줘서 미술엔 관심이 없구나 싶었다. 이런 티커를 보는 제리의 표정이 많이 불편해 보인다.

양말을 신을 때도 조금만 비틀어지거나 덜 신어지면 제리는 엄청 불편 해하면서 징징거린다면 티커는 양말을 뒤집어서 신겨도 괜찮은 아이였다. 티커가 웬만하면 괜찮아 보이고 무던해 보여서 육아하는 엄마 입장에선 편한 게 사실이지만 , 한편으로는 아무렇게나 하는 티커를 보면 거울치료를 당하는 것 같다.

그러나 티커도 아빠를 닮은 게 있었다. '감정에 연연하지 않고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티커 3세 때 가장 친한 친구가 이사를 가는 날이었다. 키즈노트 사진에서 매일 껴안고 애정하는 친구여서 마음이 쓰였다.

"티커야 너 친구 이사 간다는데 기분이 어때? 많이 서운하겠다."

했더니

"괜찮아."

라고 해서 잉? 했던 적이 있다.

어려서 그런가 해서 4살 때도

"어린이집 친구들과 같은 유치원으로 못 가면 속상하겠다."

했더니

"괜찮아. 만나고 싶으면 놀이터에서 보면 되지."

라고 하더라.



애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많이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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