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내 삶이 무의미하지 않도록.
국립 발레단만의 버전으로 재해석되었다는 ‘돈키호테’ 공연을 보러 갔다. 모처럼 발레를 감상한다는 생각에 설렘이란 낱말이, 내 머릿속을 온통 나비처럼 부유하고 있었다.
발레리나들이 무대 위로 등장했다. 나는 대사가 아닌 춤으로 표현하는 무용극에 숨을 죽이며 집중했다. 발레 동작은 우아하고 깃털처럼 가벼웠다. 매력적인 키트리와 멋진 바질의 사랑 이야기를 전달하는 장면에서는 그들의 연기력에 감탄했다. 발레란 단순히 몸의 테크닉으로만 연출하는 예술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공연의 성공 요인은 훌륭한 안무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이 작품이 ‘돈키호테’라는 서사를 품고 있기에 더 감동적이었다.
내게 있어 발레 공연의 묘미는 단연 피루엣(pirouette)이다. 쉬지 않고 연속적으로 팽이처럼 도는 동작을 피루엣이라고 한다. 나는 바질 역을 맡은 발레리노가 몇 번을 도는지 수를 헤아려 보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를 떠올렸다. 그는 ‘백야’라는 영화에서 11번을 돌고 또 돌았다. 보통 무용수들은 5~6번 정도가 평균이라고 하는데 ‘일레븐 피루엣’이라는 명장면을 연출했던 것이다.
학창 시절, 시험을 치고 나면 ‘문화교실’을 갔다. 문화교실이란 학년별로 또는 전교생이 단체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이다. 수백 명이 소풍을 가듯 영화관으로 향했으니, 가끔은 영화 내용보다 친구들과 손잡고 걸었던 장면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때 본 영화가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주인공이었던 ‘백야(1986년)’와 ‘지젤(1988년)’이었다. 그는 구소련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살아 있는 전설’이었다. 두 편 모두 무용수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에, 그가 실제로 발레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어 가슴이 벅찼다. 그 당시 나는 영화를 먼저 본 선배로부터 “미하일이 11번을 팽팽 도니까, 한 눈 팔지 말고 보거레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 연유로 미하일이 발레 하던 중 ‘턴’을 하기 시작하자, 손가락을 꼽아 가며 수를 헤아렸다.
돈키호테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기사도 문학을 탐독하다가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아름답고 고결한 여인 둘시네아를 만났지만, 그녀는 괴물들에게 납치를 당했다. 잠에서 깨어난 돈키호테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산초 판자와 바르셀로나 광장으로 향했다.
돈키호테는 기사도를 이상으로 삼고 이를 실현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가 살던 세계는 이미 그런 가치가 사라진 사회였다. 자신의 신념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곳에서 살아가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다. 나는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싸우는 돈키호테를 보며, 우리네 인간사를 엿보았다.
사람은 현실에 안주하며 살 수만은 없지 않은가. 대부분 살아가면서 자주 돈키호테처럼 자신만의 풍차를 마주한다. 스스로 정해놓은 이상과 충돌하며 심리적으로 버거워할 때도 종종 있다. 사회는, 직장은, 때때로 현실을 직시하고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 발을 딛고 땅만을 바라보라고 요구하고 다그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에 안주해 꿈과 이상을 따라가지 않고 정체된 생활을 한다면, 더 이상 개인의 발전과 성장은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발레 공연이 막을 내렸다. 돈키호테의 행동을 반추해 보았다. 다소 무모해 보이기도 했지만,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모습은 호기롭게 느껴졌다. 그의 무기는 녹슨 창과 낡은 방패였다. 하지만 어쩌면, 삶을 지탱해 준 것은 ‘용기’가 아니었을까.
“당신의 풍차는 무엇인가?” 돈키호테가, 아니,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을 작품으로 썼던 대문호 세르반테스가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도 돈키호테처럼 용기를 가슴에 품어볼 일이다. 내 눈앞에 놓인 장애물을 훌쩍 뛰어넘어도 보고, 손으로 힘껏 밀어도 봐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풍차 너머를 바라보며, 현실을 넘어, 삶의 목표를 곧추세우고 당당하게 살아가야겠다. 소중한 내 삶이 무의미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