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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Apr 08. 2023

어떤 외도 (2)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면

 고전을 읽어야 하는데 영 실천이 안 돼서 진도가 잘 나갈 성싶은 책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5권이나 되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양적으로 부담이었지만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지루하지 않을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돈키호테』를 제대로 읽었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었다. 만화나 청소년을 위한 간략본과는 얼마나 다른가?

 극적 구성이 대단해서 요즈음 같으면 대박 드라마 작가시군 했다가, 곧 생각을 바꿔야 했다. 문학의 향기가 장난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인이며 소설가? 정신분석 심리학자? 여행 작가? 문화예술 인문학자? 점점 뭐라 단정하기 어려워졌다. 작가 뒤마 앞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해도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셈이었을 것이다. 음악  미술 장르든 여행이든.

 예를 들면 나는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 밖에 모르지만 이 책의 주인공들은 <돈 파스콸레>의 꿈의 이중창을 듣고,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를 감상한다. 뒤마는 이탈리아, 터키, 그리스를 모두 떼서 그 지방 곳곳이 손안에 환하다. 나는 아직 가 보지도 못한 그곳!

 결국 작가의 성품(박학다식함)이 어느 정도 투영된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탄생했는데 그만 그에게 푹 빠져 버렸다. 권총 검술에도 능하니 문무를 겸한 인물이다. 청소년 판에서는 복수심에 불타는 성품이지만 원본에선 하늘을 향해 얼마나 자신의 마음을 검토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에드몽 당테스를 괴롭혔던 사람들 몰락의 대부분이 스스로 뿌린 다른 악의 결과였다. 악인 빌포드 검사의 아들이지만 죄 없는 어린아이의 죽음에 애타하는 광경이랄지, 파리아 신부에게 몬테크리스토 섬의 보물에 대해 자격 없다고 고사하는 장면에서 그의 순전함, 겸손함을 엿볼 수 있다. 깊은 우수를 띈 수려한 외모에다가.

 이런 사람과 사랑을 한다면?

 일생일대의 연애를 할 수 있다면 이런 인물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혼을 전제로 한 소개팅 비슷한 것을 하고 일 년간 교제한 후에 식을 올렸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자연발생적인 연애에 대한 로망이 있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좀 클래식한 캐릭터에 빠지셨군,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부유한 백작 신분으로 <미션 임파서블>의 탐 크루즈 보다 더 치밀하고 능력 있게 미션을 완수해 나가는 모습을 보라.

 비현실적으로 완벽하잖아? 맞다. 그것이 문제였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모든 것을 갖췄다. 특히 어마어마한 부(富)를.

 그가 그렇게 부자니까 멋있는 것일까? 한번 부(富)가 빠진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평범한 중산층만큼의 부를 소유한 그. 매력이 조금 줄어드는 것 같았다.

 다음엔 가난한 그.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가난하다 해도 나는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쏭달쏭했다.

‘아! 나는 그의 부(富)를 사랑했구나’

‘나는 이렇게 속물이란 말인가?’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책을 앞에 두고 몬테크리스토 백작과 카페에서 만나는 장면을 그려보았다.

“사실 제게 몬테크리스토 섬의 보물 같은 것은 없습니다.”

“아…. 그래요?”

“제가 무일푼이라도 저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저….”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오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날 남편의 육감(직관)이 발동되었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내가 읽는 책의 제목을 묻는 사람이 아닌데.

“당신 요새 무슨 책을 그리 열심히 읽어?”

 가벼운 한마디에 백일몽은 스톱되고. 우리의 가정(家庭), 소박한 둥지는 별 동 없이 무사히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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