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램즈이어 Mar 19. 2023

분갈이하는 나이가 되다?

빈 둥지 풍경

분갈이와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싶겠지만 분갈이하는 20 30을 보셨는지? 아마 40 대까지도. 인생 고민과 일에 치여 사는 그네들이 분갈이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분갈이하며 유독 나이를 의식했다. 

 아마도 시어머니 모습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이제 그 나이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쭈그린 자세로 일을 벌이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며 무척이나 심난해했었다. 내 생애 분갈이 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며. 그런 내가 요즈음 허리에 나쁘기 짝이 없는 그 자세로 분갈이에 한창이다.

 어머니 소천 후 작은 집으로 이사 오면서 커다란 화분들은 모두 어디론가 보냈다. 키우기 쉬운 몇 개만 남겨서 그럭저럭 키워왔다.

 올 3월 들어 자의 반 타의 반, 주말마다 분갈이를 해야 했다. 분가한 아들이 자기 집이 좁다며 키워 달라고 화분을 몇 개 가져왔다. 육각형 화분에 갇힌 금전수와 페트병에 싹을 키운 열대 씨앗 들이다. 집들이 선물인 것 같은 금전수는 잎과 줄기가 두툼하고 싱싱한 것이 좁은 화분에서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것 같았다. 아보카도, 망고, 레몬의 새싹 줄기는 아들이 열대 과일을 먹을 때마다 심어서 성공한 녀석들이다. 키워내는 기술이 좋은지 날이 갈수록 식구가 불어서 “이제 그만” 하며 사양했다. 

“제발 과일 먹고 나면 미련 없이 씨 버려라. 심을 생각 말고.”

 어린 동백은 유일하게 내가 분갈이를 각오하고 아파트 장터에서 구입한 것이다. 작지만 4-5년생이라며 큰 화분에 옮겨 주면 크게 자랄 것이라고 했다. 

 베란다에 분갈이 흙 포대를 쌓아두고 판을 크게 벌였건만 남편은 조용하다. 주말에 각자 알아서 자기 시간을 사용하는 터라 혼자 힘으로 가려는데 금전수에서 막혔다. 잘 자란 그루터기가 나올 생각을 안 했다. 할 수없이 남편 도움을 청하고 그 힘으로도 안 돼서 망치로 육각형 도기 화분을 빠갰다.

 마지막엔 흙이 부족했다. 분갈이 흙 주문을 다시 해서 올 때까지 어린 망고 줄기 두 그루가 맨몸인 채로 있어야 했다. 삼사일을 어떻게 기다린담? 땅의 도움을 받자. 사방에 널린 것이 흙 아닌가? 호미와 큰 비닐봉지를 들고 아파트 뒤 화단을 기웃거렸다. 

‘내가 화분 버릴 때 흙을 여기다 버렸으니 좀 퍼 가도 되겠지?’

 그리고 누가 물으면 사정을 이야기하리라 하며 두둑이 흙을 담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두근두근 무슨 도둑이 된 심정이었다.

 동백나무는 작고 초라한 화분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귀티가 났다. 심긴 화분에 따라 이렇게 분위기가 달라지니 애 네들도 옷이 날개인가 보다.

 아고고 하며 허리를 간신히 펴고 일어서니 아들들의 잔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내가 과거에 시어머니께 늘 했던 멘트. 

“그렇게 나쁜 자세로 왜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벌이세요? 허리도 안 좋은 분이.”

  스스로 퍽 대견해서 동창 단톡방에 사진을 찍어 올렸다.

“꽃 가꾸는 여유도 있네.” 바쁜 친구는 부러워했다.

“고수는 말려 죽이고 하수는 과습으로 죽인단다. 물 알맞게 주고 예쁘다 칭찬하며 바라만 봐주어 보아.” 고수 친구의 조언이다. 물을 자주 주지 않게 조심해야 하나보다. 

 은근 보람과 재미가 느껴져 그 어렵다는 군자란도 분갈이해 볼까 대담한 생각까지 스친다. 다른 화분들도 이 녀석은 이렇게 저 녀석은 요렇게 해줘야겠다며 볼 때마다 궁리가 솟는다.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며 자꾸 분갈이 욕심이 커가니 이것도 빈 둥지 증후군의 한 증세이리라.

작가의 이전글 지젤과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