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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모국경 Jan 03. 2023

경찰을 해서는 안 되는 나이

신년의 시작점

이맘때면 특별한 구실 없이도 신년이라는 게 구실이 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메시지를 보내기도 연락을 해 보기도 한다. 그래서 평소 같으면 '무슨 일?'이지 하고 의문을 품은 채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받겠지만 연초에 오는 전화는 그 어떤 긴장 없이도 가볍게 전화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기자 전화

기자 전화는 인사말인 서론에 휘둘리지 않고 본론에 집중해야 하기에 항상 긴장하다.

그래서 전화벨이 울리면 전화가 끊기더라도  곧장 받지 않는다. 받기 전에 목소리를 가다듬고 생각을 가다듬는다.

아니나 다를까

신년의 인사는 그냥 서두에 띄우는 예의상 멘트이고 사건에 대해 문의해 온다.

기자라는 직업상 마땅하다. 그리고 난 그런 기자들을 좋아한다.

경찰과 기자는 친해질 수 없는 사이라 하지만 난 속으론 좋아하고, 또  터놓고 술 한잔 같이 할 만큼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한다. 그래서 겉으론 기자의 '문'에 미리 타이핑 쳐둔 정해진 '답'만 말하지만 마음 한편엔 여러 말들이 입 속에서 달그락 거린다. 특히 나름 정의로운 의식을 가진 늠름한 기자를 만나면 우리 같이 한편 먹고 '정의사회 구현' 해보자고 웃긴 제안도 해 보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 쪽도 내 쪽도 우린 서로에게 의구심을 품고 대화하는 사이니까...



다시 아니나 다를까로 돌아와~

아니나 다를까 사건에 대해서 물어왔다.

그리고 뉘앙스를 풍겼다.

"아직까지 사건을 종결하지 않은 이유가 어떤 외압 때문은 아닌지..."

조심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대놓고 풍기는 경찰에 대한 불신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자의 질문에 도리어 안도의 미소가 지어졌다.

국민 알 권리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사건 진행과정을 물어오면 어느 선까지가 드러내도 되는 국민의 알 권리인지, 어느 선까지가 드러내서는 안 되는 수사 내용인지 그 경계의 판단이 어려울 때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자의 꼬치꼬치스런 파고드는 언변 능력까지 발휘하면 그 물음에 말려들까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런 자신만만한 쉬운 질문이라니~~~

마치 내가 아는 문제만 나온 시험지를 받은 것처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었다.

"단연코..."




22년을 지나 23년이 왔다.

나이도 한 해를 지나 한 살을 더 보태었다.

인생 곡선에 따르면 내 나이는

점점 성장하고 점점 젊어지는 지점이 아니라

점점 쇠퇴하고 점점 노화가 진행된, 이미 꺾인 지점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젊고 싶다. 아니 젊다.


그래서 기자에게도 '단연코'에 이어 '난 여전히 젊다'라고  했다.

젊다는 건... '좋은 것을 좋다고 느낄 수 있는 감수성과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고 옳지 못한 일에 분노하고 고뇌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고를 덧붙여... 

내가 젊다는 걸 은근히 증명도 했다.




내가 말도 안 되는 불의와 타협한다면 그건 늙은 것이다.

결코, '경찰을 해서는 안 되는, 할 수도 없는 늙음의 나이'인 것이다.

내가 자란 시골에선 이런 늙음을 두고 짧게 '노망'이라 퉁쳤다.


제아무리 나이를 보태고 보태도

적어도 경찰로 사는 한, 나는 나의 젊은 아름다움단명하지 않기를  2023년에도 약속하고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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