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많은 선택들을 하면서 살고 있다. 무엇을 먹을까? 어디로 갈까? 누구를 만날까? 무엇을 살까? 등 일상생활에서는 수도 없는 선택들을 한다. 그러나 선택의 순간, 나도 모르게 선택 장애를 겪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선택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최고의 선택은 너무나 어렵다.
학교 현장에서는 교장에게 많은 선택권을 주고 있다. 예를 들어, ‘초중등교육법 제8조(학교규칙) 1항 학교의 장은 법령의 범위에서 학교 규칙을 제정 또는 개정할 수 있다.’, ‘초중등교육법 제18조(학생의 징계) 1항 학교의 장은 교육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법령과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징계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지도할 수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처럼 학교의 장은 법령에 의거하여 교육에 대한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교사는 ‘초중등교육법 제20조(교육원의 임무) 4항 교사는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학교 현장에서는 교사에게 교육에 대한 선택권을 주지 않고 있다. 교사는 학교의 장이 정한 학사일정, 시간표에 맞춰 출퇴근을 하면 되고, 학교규칙에 의거하여 학생들을 지도하고, 국가교육과정에 적합한 교과서를 가지고 수업을 하면 된다. 그리고 선택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관련 매뉴얼을 찾아보거나 학교의 장 또는 교육청 장학사에게 문의하면 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학교현장에서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교사협의회가 많아지고 교사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사가 교육과정을 구성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고 있다. 기존의 방식처럼 법령, 지침, 매뉴얼에 의거하여, 학교의 장에 명령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고, 국가교육과정에 따라 수업을 진행할 때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책임지지 않아서 너무나 편했다. 그러나 이제 나의 의견이 곧 학교의 교육 방향을 설정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고, 나의 선택이 학생들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생각하니 부담스럽고 불안하다. 일상생활에서처럼 최고의 선택을 위해 정보를 탐색하고 고민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의 순간이 되면 머뭇거리고 회피하려고 한다.
나는, 교사들은 왜 선택의 순간 머뭇거리게 될까? 우리는 인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험을 치러왔다. 시험은 정답이 있는 5지 선다형 또는 단답형, 장문형 시험이었다. 이 시험에는 정답이 있으며, 잘못 선택하면 삶이 꼬일 수도 있다. 우리는 매 순간 최고의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다가왔다. 인생에서 최고의 선택이 있을까? 나는 선택에는 정답이 없고, 선택을 하는 순간 그 선택이 최고의 선택이자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선택에 책임지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책임은 징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선택을 반성하고 다시 바로 잡으려고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야심 차게 국가교육과정에 의거하여 나만의 교육과정, 교과서를 만들어 수업을 했으나 수업의 효과성과 만족도가 떨어진다면 동료 교사, 학생들과 다시 의논하여 함께 수업을 만들어 가면 된다. ‘내가 만든 교육과정과 교과서는 잘못된 선택이었어.’라고 후회하기보단 무엇이 문제였고, 어떻게 수정하면 될까라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민한 부분을 동료 교사와 학생들에게 나누는 것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매일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만 먹어야 한다면 어떨까? 반대로 일상생활에서 자신에게 선택권을 주어준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출퇴근 시간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떨까? 나는 어렵고 불안하지만 선택권을 주는 삶을 살고 싶다. 최고의 선택이 아니라 최선의 선택을 하며, 나의 선택에 책임지려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