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오후

by 풍뎅이

11월은 소리도 없이 순식간에 자리를 잡았다. 어느 순간인가 창틈으로 스며드는 싸늘한 공기가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문득 "아, 11월이지"


날이 차가워지고 있지만 아직 동네를 한 바퀴 걷는 데는 부담이 없다. 되레 선선한 기온이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늦가을의 햇살도 투명해서 좋다. 이제 달력은 두 장 남았다. 시간의 흐름은 하루하루 가속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래 살려고 바둥댈 필요가 없다. 주어진 시간이라도 값지게 쓰는 게 낫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지난 한 주도 '어영부영' 별생각 없이 보냈다. 술자리가 몇 번 있었고, 다음날은 그 여파로 생활의 집중도가 떨어졌다. 사색의 시간도 짧았다.


평온한 삶을 산다는 것은 축복이다. 평온하게 살려면 우선 집착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명성과 부에 대한 집착, 자식의 앞날에 대한 집착. 집착은 종류도 참 많다. 이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도 사실은 집착이다. 이제 조금씩 이런 집착에서 벗어나야 할 나이가 됐는데도 여전히 얽매인 연결고리가 많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은 구분되기 마련이고, 머릿속에서는 이를 이해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나이를 먹었어도 수양이 부족한 탓이다. 아마도 이런 집착의 끈에서 해방되는 것은 사는 동안은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라는 예감도 든다.


베란다 창문에 햇살이 따사롭게 스며든다. 녹차를 마시며 자판을 두드리니 평온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고요가 안겨주는 평온함. 이런 시간이 늘수록 삶은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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