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가면 합스부르크 왕가의 무덤인 '카푸친 크립트'가 카푸친 성당 지하에 있다. 이 지하공간에는 모든 조각품과 예술품이 사람의 뼈로 만들어져 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모토가 적혀 있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의 당신과 같았다. 당신은 지금의 우리와 같게 될 것이다"
죽은 자가 산자 아니 언젠가 죽을 자에게 하는 얘기다. 인간은 누구나 유한한 삶을 산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유한함이 적어도 지금 당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한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1년과 30년의 삶은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유한함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은 아니다.
퇴직을 한 뒤 시간이 많다 보니 잡념이 많아진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문다. 지금의 시간이 그냥 흘러 보내는 시간이 아니라고 위로하면서... 스스로를 다져가는 시간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다.
시월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하지만 10월은 인간다움을 느끼게 하는 계절이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수십만 년 전부터 지구상에 살았던 수많은 우리 선조들도 가을이 안겨주는 짙은 감상에 젖어 잠시 철학자가 됐을 것이다.
아파트 공터에 예쁜 나무가 한그루 있다. 베란다에서 보이는 이 나무는 아담한 크기지만 계절의 변화를 어김없이 담아낸다. 새싹이 돋고 녹음이 지고, 이파리에 물이 들고, 찬바람에 잎사귀를 떨군다.
창밖으로 가을 햇살이 비치는 공간의 대기가 투명하다. 그것을 바라보는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평온한 하루하루가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