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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hwa Lee Nov 14. 2019

비둘기의 가망

위로 삼는 마음이란 다분히 사람의 것 이라는 생각을 하며


비가 온 다음날이었다. 봄비답지 않게 시원시원 굵은 빗방울이 하늘을 훑어내린 다음이었다. 산책시간에는 비가 그쳐 다행이라고, 그새 걷기에 맛이 들린 나는 얼른 횡단보도를 건너서 천변으로 가는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며칠 새 풀들은 눈에 띄게 무성해졌다. 흙길 중간중간 생긴 웅덩이를 피해 걸으며 나는 늘 앉아있던 벤치를 지나 더 걸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점심 산책은 시간이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편도로 아주 멀리 가보는 것은 불가능하고, 나는 대신 앉아있을만한 벤치를 찾아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아니면 그날 그날 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나 징검다리 중 하나를 마음으로 골라 한바퀴를 빙 둘러서 돌아오고는 했다. 마음 속으로 다리 하나를 골라 그리로 향하던 나는 저 멀리 물웅덩이 안에 검은 비닐봉지가 둔중하게 펄럭이는 것을 발견했다. 호기심이 들어 가까이 다가간 나는 그게몸이 반쯤 진흙에 잠긴 까만 비둘기 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차라리 못 봤으면 좋았을 걸. 비둘기를 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딱히 스스로가 선하다 생각치는 않지만 그렇다고 모질지도 못한터라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비둘기는 배부분이 웅덩이 진흙에 축축히 젖은채 뙤약볕에서 지쳐가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다가가자 이따금 날개를 퍼덕였지만 웅덩이에 파묻힌 다리조차 일으키지 못하는 신세였다. 가만히 눈만 껌벅이는 비둘기를 앞에두고 나는 오도가도 못한채 맴돌고 있었다.

다행히 초록색 똥_ⓒ황려진

도와줄까? 어떻게? 사실, 비둘기일 뿐이잖아. 비둘기가 다치고 죽는일은 정말 흔하니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다가, 흔한 비극을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여기는 스스로에게 서늘한 마음이 들어버렸다. 쓸모 없는 고민으로 시간을 보내는 중에도 사람들은 비둘기를 흘긋대며 지나갔다. 나는 그들 중 나의 고민에 동참해줄 이가 있기를 바라며 눈치를 살폈다. 머리가 희끗한 할아버지 두분이 비둘기를 발견하고는 발로 차는 시늉을 해보였다. 비둘기는 아까 처럼 날개만 몇번 푸드덕 할 뿐이었다. 내가 눈을 피하지 않고 그  광경을 빤히 보자, 노인들은 눈치를 살피더니 뭔놈의 비둘기가 날지도 않아, 라는 볼멘소리와 함께 자리를 떳다. 다음으로 다가온 것은 산책을 하는 아주머니 둘이었다. 어머, 비둘기좀 봐 다쳤나봐. 얘는 왜 이러고 있지? 아주머니 한분이 관심을 보이고 다가오려하자 다른 한명이 팔을 잡아 끌었다. 비둘기잖아, 병옮아. 비둘기가 얼마나 더러운지 몰라서 그래? 결국 내가 길가에 서있는 이십분 동안 비둘기는 여전히 웅덩이에 잠겨있었고, 비슷한 상황은 반복되었다. 강아지나 고양이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다지 쓸모있는 상상은 아니었다. 어쨌든 다친 것은 비둘기였다.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확인 한 나는 편의점으로 가서 작은 도넛하나와 비닐봉투를 구해 돌아왔다. 우선 육안으로는 상처가 전혀 보이지 않으니  비둘기를 사람들의 눈에띄지 않게 옮겨두고 기운을 차리게 해볼 요량이었다. 죽고 살고는 그 이후의 문제였다. 비닐을 사각대며 돌아오는데 어쩐지 몇 분 전 나와 같은 포즈로 길가에 서있는 여자 한 명이 보였다. 혹시나 싶어서 나는 말을 걸어보았다.


“저어, 비둘기때문에 그러세요?”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쥔 여자는 운동을 나왔다가 비둘기를 발견했다고, 구청에 전화 해 봤는데 비둘기가 다쳤다니 별다른 반응이 없고, 혼자 옮겨보려고 나뭇가지로 배부분을 들춰봤는데 뭔가 물컹한 게 보여 더이상 못건드렸다는 이야기를 쏟아놓듯 들려줬다. 


“아마 밟힌 것 같아요 목을 한 방향으로 밖에 못움직여요. 아까 본 게, 혹시 내장이 나온거면 어떡해요?”


나는 덜컥 겁이 났다. 비둘기를 맨손으로 잡아본 적도 없고, 그나마 수월하게 옮겨보려 비닐을 구해온 것이지만 정말 여자가 말한대로라면, 비둘기의 배 아래는 내장으로 흥건할지도 모를일이었다.


“제가 해볼까요?”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


머뭇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여자가 제안했다. 용기내서 했을 말을 들으니, 내게도 용기가 생겼다. 검정비닐에 두 손을 깊숙히 넣고  비둘기를 감싸 들었다. 여자가 내장이라 짐작한 것은 비둘기의 초록색 배설물이었다. 비둘기는 가볍고, 차갑고, 순순했다. 우려와는 다르게 퍼덕임 한번 없어, 나는 쉽게 비둘기를 길가의 넝쿨 뒤 그늘로 옮길 수 있었다. 사온 도넛을 부스러뜨려 머리 맡에 뿌려 주니, 고개를 주억거리며 열심히 먹었다. 우선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고싶은 마음이 있구나.

하지만 해줄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나는 다시금 회사로 돌아가야 했고 여자도 곧 떠나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래도 사람들 눈에띄지 않는 곳에서 기운을 차리면 살아날 거예요. 길 한가운데 있는 것 보다는 나으니까. 우리는 비둘기의 가망 같은 것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말들을 나누고 헤어졌다.


퇴근무렵에는 비가 왔다. 나는 풀숲의 비둘기에 대해 생각했다. 낮동안 마른 웅덩이에는 다시금 물이 차오르고 있었고, 나는 그가 넝쿨 뒤에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동네에는 고양이도 많고, 산책을 하는 사람도 많다. 낙오된 비둘기에게는 어떤 시간이 기다릴지, 나는 알지 못한다. 숨지 못했더라면 더 모질었을지 모르는 순간들을 조금이나마 모면하게 했다는 위로를 하며, 그런 걸 위로 삼는 마음이란 다분히 사람의 것 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풀숲으로 향하는 눈길을 거두고 집으로 발길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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