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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성 Aug 26. 2023

숲의 경계에서 마음 정하지 못하고

  무언가 몰래 버리려고 숲으로 온 사람은 주변을 살핀다. 손에는 슬픈 기억이 있다.

  지난 시간에는 죽음이 많았다. 10월엔 아버지 3월엔 강아지. 어머니가 비옥토를 한 주먹 들고 생각에 잠겨 계신다. 어머니를 꼭 안아드리고 4월과 5월엔 무감해야지, 생각했다. 같은 밭에 같은 식물을 계속 심는 연작은 밭을 망친다.

  1살 난 조카와 놀았다. 조카는 하고 싶은 말보다 수줍음이 많았다. 장난감을 늘어놓고 뭔가 뜻이 있다고 하는 것 같지만, 알 수는 없었다. 내 검지손가락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그게 자기가 아는 유일한 숫자라는 듯이, 그게 수줍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랬다.

  비가 왔었다. 자동차 앞 유리에 물방울이 맺혔다. 흐린 날 숲에 가면 한층 어두운 숲이 보인다. 젖은 땅을 밟아도 소리가 없다. 해줄 말이 없다는 듯 물을 삼킨다.

  숲은 죽음을 먹고 자란다. 낙엽과 사체가 스민 땅이 건강하다. 나는 숲의 경계에서 마음 정하지 못하고, 내가 사는 도시로 돌아가 버릴까, 생각한다. 빽빽한 숲의 생기가 쥐들을 밀어낸다. 쥐들은 도시로 가서 살고 죽고 번성하고 사람들은 쥐를 잡자, 쥐가 나온 것 같아! 당신이 좀 내려가 봐, 이야기한다. 그런 일도 생긴다. 숲에 남은 쥐들이 껑껑 운다. 앞서간 쥐들이 그리운 걸까.

  아팠다가 일어난 사람은 이상한 기대감에 차 있다. 회복기에 접어든 몸이 미약한 열을 낸다. “그래도 아직은 무리하지 마.”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리면 그래야겠다고 생각한다. 무리하지 말아야겠다, 당분간은 살아있기만 해야겠다. 결심해 보기도 했다.

  숲에 무언가 몰래 버리면 안 된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 그것을 배웠다. 그래서 그대로 따른다. 숲은 고마움도 애석함도 없이 물안개에 가려져 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숲이 앞쪽에 있다고 짐작할 뿐이다. 나는 자주 짐작하여 사랑하곤 했다. 어두운 숲에서 쥐들이 사랑하는 방식처럼. 믿을 수밖에 없을 때는 믿으면 된다.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 그럴 거라고 말하는 것이 인간의 아름다운 점이었다.

   나란히 아버지 무덤을 내려보다가 편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잘 모르겠으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랬으면 좋겠다.

  기억을 무심함으로 키우는 게 내 마음의 조경법이었다. 거기에 통증은 없으니까. 그래도 다정함을 조금 갖고 싶어서 여기저기 자투리 밭을 만들고 있었다. 어제는 한참 무심한 나무 아래 사랑하는 나의 개 알리의 무덤을 만들었다. 내가 가장 신뢰하는 나무인 무심함을 내 친구에게 주고 싶었다.

  다정함과 무심함이 자라서 하나의 숲이 되었으면 좋겠다. 거기에 아무런 뜻이 없다고 해도 행복한 개의 무심한 미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숲을 떠난 쥐들의 안부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먼저 아파보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챙기는 일이 문득 중요하게 여겨졌다. 사람들이 묻어둔 슬픔을 먹고 거대한 숲이 되기를. 슬픔이 이어지더라도 잘 견딜 수 있기를. 더 검고 윤기 나는 흙을 내 사랑의 어깨에 쌓을 수 있기를. 지난 시간에는 죽음이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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