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버튼

감정이 벅차오르는 이유

by 초이

어릴 때는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눈물을 흘렸다. 마치 내가 등장인물이 된 것 마냥 슬픔에 잠겼다. 지나치게 커버린 지금도 슬플 것 같은 영화를 볼 때면 휴지를 챙기곤 한다. 그런데 챙겨간 휴지가 무안해진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슬픔에 면역력이 생기는 것인가? 분명 감동적인데 눈가는 바삭바삭 건조하다.






이런 나에게 놀랍게도 눈물 버튼이 있다. 가을방학의 <언젠가 너로 인해>라는 노래를 들을 때면 눈가가 축축해진다. 이 노래는 나를 가장 순수하게 사랑하는 존재를 떠오르게 한다. 바로 우리 강아지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강아지와 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금은 항상 내 곁에 당연한 듯 존재하고 있지만, 그의 시간은 내 시간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그가 나보다 빨리 떠날 거란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슬프다. 세상에 사랑할 거라곤 나밖에 없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는 그 눈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강아지와 함께 살기 전까지 나는 사랑이 아프다는 말은 그저 정형화된 문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강아지를 키워도 보고, 보내도 보면서 그들이 주는 사랑은 인간의 것보다는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그 사랑이 아프게 느껴진다. 이 노래를 들을 때면 그 사랑이 가득하다 못해 아픈 절절한 눈빛이 떠올라 눈물이 저절로 흐른다.







또 다른 버튼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판다, 바오 가족의 영상 중 하나이다. 아이바오의 딸로 태어나 엄마와 함께 성장한 푸바오. 판다 특성상 푸바오의 독립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과정 중 하나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이 헤어지기 전에 독립 연습을 시작한다. 오후 6시경에 헤어져서 다음 날 아침 7시경에 만났다. 서로를 찾으며 울다가 이내 적응을 하고 잘 보내는 듯 보였다. 그런데 아침에 만난 두 모녀의 영상은 계속해서 내 눈물을 자극한다. 아이바오는 자기만큼 거대해진 푸바오를 껴안고 놓아주지 못한다. 헤어지기 싫다는 말 대신 온몸으로 표현한다. 푸바오의 크기가 거대해졌어도 아이바오 눈에는 그저 아기 판다인가 보다. 따로 살아가는 게 그들의 습성이라지만, 모성애는 인간의 것보다 대단해 보였다.







나는 사랑이라는 것에 진지한 편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도 못하다. 그래서 형용할 수 없는 사랑이 담긴 것들을 보면,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사랑은 말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몸에서 나타난다. 사랑하는 존재를 바라보는 눈빛과 다정한 몸짓에서 사랑이 보인다. 그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온다. 사랑은 차가운 마음까지도 한순간에 무장해제 시키는 위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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