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네모난 작은 세계는 내게 너무 좁아서
포스트잇인가 포스트잍인가. 문득 궁금해 검색해보니 과거에는 유명 회사 상품명이 '포스트잍'이긴 했나 보다. 이제는 모두가 포스트잇으로 부르는 붙였다 떼었다 하는 메모지, 아무튼 그거. 회사고 집이고 책상에는 포스트잇이 늘 사이즈별, 색깔별로 구비되어 있다.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없으면 아쉽지만 이상하게 포스트잇은 늘 넘쳐난다. 지금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받은 포스트잇 세트는 4년 차가 된 지금도 거의 그대로다. 노트에 메모하면 되지 노트에 종이를 굳이 붙일 필요는 없고, 모니터에 주렁주렁 붙이기도 싫어하니까. 교과서를 쓰던 학생 때에야 포스트잇을 붙여야 했지만 이제는 아무 데나 쓰면 그게 메모지가 된다. 결국 늘어나는 속도가 소비하는 속도에 비해 현저히 빠르다.
학생 때는 학교 앞에서 판촉물로 포스트잇을 많이 받았다. 판촉용 포스트잇은 3M에 비해 품질이 좋지 않아서 늘 모서리가 일어났다. 국사 판촉물은 포스트잇에 한반도 지도가 그려져 있어 신박하다고 생각했고, 포스트잇 플래그까지 들은 판촉물 제작자의 센스에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잘 붙어있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서 3M의 포스트잇도 계속 사서 썼는데, 몇 번쯤 붙였다 떼어도 탄탄해서 좋았지만 형광색 일색이라 예쁜 필기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괜찮은 노란 별 모양을 사서 써봐도 막상 메모하려면 여간 불편하지가 않았다. 품질이냐 디자인이냐. 그것이 문제였다.
어느 날 3M은 형광색을 벗어나 파스텔톤의 포스트잇이 출시하기 시작했다. 조그만 나라 한국 어느 여학생의 고통을 마침내 알아준 것일까? 하지만 파스텔톤을 풍족히 즐기기도 전에 나의 학창 시절은 끝났고 이제는 파스텔톤이건 형광이건 네모나기만 하면 아무 글씨나 휘갈기는 어른이 되었다. 어쩌면 파스텔톤 포스트잇 정도로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불만투성이 어른이 되었는지도. 방금 막 파스텔 분홍의 포스트잇이 또 책상으로 하나 굴러들어 와서 부리는 투정은 아니다. 포스트잇은 쌓여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