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어디선가 엄마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면
1541 콜렉트콜을 활용하던 초등학생의 나라면 20살이 넘어서는 집 전화를 쓰지 않으리란 말을 믿지 않았을 테다. 학교 앞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걸면 엄마는 늘 사교적인 목소리로 '여보세요~'를 말했다. 엄마, 난데!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좋았던 시절.
오래 버티던 엄마가 마지막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되면서 집 전화는 오랜 잠에 빠져들었다. 카톡으로 이야기하면 한 번에 모두에게 말할 수 있는걸. 부모님이 능숙하게 이모티콘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동안 전화기 위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였다. 어느새 인터넷 사이트를 가입할 때도 집 전화는 필수 입력란이 아니게 변했다.
몇 년 전 이제 집 전화로는 스팸 전화만 온다는 엄마의 푸념에 무심코 유선전화는 없애버리자고 말했다. 선거철 설문조사 전화나 좋은 땅이 있는데 투자하라는 전화를 위해 빨래를 하다 달려오기가 지친다며. 엄마도 당장이라도 없애버릴 기세였는데, 어쩐지 전화기가 계속 그대로 있었다. 몇 달 후 엄마에게 넌지시 물었다. 전화기 왜 안 없애. 엄마는 말했다. 외할머니가 전화할까 봐.
엄마에게 마지막까지 전화를 걸던 사람은 외할머니였다. 치매가 진행될수록 전화의 빈도는 잦아지고 수다는 짧아졌다. 하루에도 몇 번,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할머니는 전화를 걸어 밥은 먹었느냐 물어보았다. 그리고는 끊었다. 할머니가 외운 번호는 몇 없었으니 아마도 큰 이모 집과 우리 집 정도만 계속 전화를 받았을 것이다. 할머니의 전화를 받으며 엄마는 엄마가 또 전화한다며 웃었고, 매번 같은 대답을 해줬고, 뚝 끊어버린다고 웃었다.
어느 날부터 아예 전화가 오지 않았다. 그 무렵 할머니는 내 이름도 잊었다. 할머니와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으리란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엄마가 전화가 오지 않아 상실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아주 늦게서야 겨우 떠올렸다.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거란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이제 전화는커녕 거동도, 식이도 어려워졌다. 딸을 알아볼 수 없고 남편이 세상을 떠난 사실도 알지 못한다. 그래도 우리 집 전화는 그 자리에 있다. 나는 전화가 오래 남아있었으면 한다. 할머니만 괜찮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