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내 병원에 예약한 건강검진을 받았다. 다른 약속에 1시간 30분의 여백이 생겼다. 가까운 한라 식물원을 찾았다. 후박나무 숲은 여전히 짙은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유리 온실에는 초겨울의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다시 소로를 따라 원형 잔디 광장을 지나니 따사로운 눈길로 변한 햇살이 연못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물가로 부들이 군집하여 소시지를 달았고 연못 가운데에는 바위가 놓였다. 그 위에 당당한 자세로 머리를 들고 있는 생물이 눈에 들어왔다. 거북이는 아니고 자라다. 꼼짝 않고 어깨(?)에 힘 들어간 포즈로 서있다. "풋" 웃음이 나왔다. 몸집은 작아도 자라는 포식자다. 연못에는 천적이 없다. 자신이 제왕이라도 된 양 거만해 보인다. 아니 위풍당당한 건가?
어떤 것을 깨우쳤을 때, '아 이걸 왜 몰랐지? 이걸 20대에 알았더라면, 아니 10년 전에 알았더라면 나와 가족의 인생이 어떤 면에서든 훨씬 나아졌을 텐데.'라고 깨달음과 동시에 아쉬움을 갖게 된다. 평생 겸손하게 계속 배워야 하는 이유다. 내가 안다고 생각한 순간 배울 필요가 없어진다. 그것이 교만이다.
교만한 자는 자신만 모르고 주위 사람들은 모두 안다. 그가 교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교만은 낮은 자존감에서 싹트고 열등감이라는 양분을 먹고 자란다. 언제든 마음을 차지하려 기회를 노린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일갈은 "너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즉 "겸손히 배워라"는 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