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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 Nov 17. 2024

시간을 거슬러

11월에 새순이 돋은 붉은 아까시

  붉은 아카시아 나무에 새순이 돋았다. 11월 중순이다. 온실도 아닌 제주 중산간 마을의 외딴집 정원이다.


  시월에 웃자란 도장지를 잘랐다. 나무는 아픔을 겪어야 작품이 된다. 제멋대로 자라게 해서는 수형을 아름답게 만들지 못한다.


"나무가 아프지 않겠나?"

"나무를 괴롭히는 것이다."

"나무의 입장을 생각하라"라고 하면 이렇게 대답한다.

"훈련목입니다." 


  '훈련목'이란 조경인들이 쓰는 용어이다. '교육 중인 나무'라고 해도 되겠다. 교육받지 않은 아이가 훌륭한 인격과 실력을 갖춘 성인으로 자랄 수 있을까? 늑대소년이란 영화가 있었다. 실례로 정글에서 발견된 소년이 모티브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말조차 익히지 못하여 동물적 본능으로 행동했다. 이처럼 나무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견딜만한 스트레스를 주고 필요 없는 가지는 자른다(삶에 적용은, 그래야지 하면서도 잘 안된다).


  제주에는 아까시나무가 많지 않다. 길가에 몇 그루 본 게 다이다. 대부분의 제주인들은 제주에 아까시나무가 있다는 것도 모를 것이다. -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아까시나무를 알아차리기에 제주땅이 꽤나 넓다 -  산림녹화 시대에 제주에는 아까시나무를 식재하지 않았다(주로 일본산 삼나무를 많이 심었다). 아까시나무는 번식력이 좋기에 빠르게 숲을 이룬다. 제주에는 풍토가 맞지 않은지 몇 그루 확인한 나무 외에 숲이라고 할만한 아까시나무들을 본 적이 없고 들은 적도 없다.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조경 소재용 붉은 꽃 아까시나무 모종을 얻었다. 화분에 심었더니 성장이 빨랐다. 몇 년이 지나는 동안 키를 줄이기 위해(분재로 키우려고) 쑥쑥 자라는 아까시 줄기를 전정가위로 잘랐다. 시월에 마지막 손질을 해 주었다. 11월 12일에 보니 새순이 돋아있다. 옆가지에는 노랗게 물들어 가는 단풍이 달려 있다. 나무는 햇빛을 광합성하여 충분한 양분을 얻고 낙엽이 되기까지 두어야 하는데 잘렸다. 생존의 위기를 느낀 나무(가지)는 줄기에 모아놓은 양분으로 계절을 거스르며 새순을 틔운다(뿌리가 각성하여 힘을 내는지도). 이렇게 틔운 새순은 낙엽이 다 진 뒤에 눈이 내릴 때까지도 달려 있을 것이다. 가을 새순은 겨울을 견디지는 못하고 추위가 닥쳤을 때 얼고 비로소 떨어진다.


  위기를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성으로는 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위기를 예상하고 준비를 마친 사람은 더 큰 기회를 보며 좋아할 수도 있겠다. 예고 없는 위기는 삶에 갑자기 닥치는 것이고, 회복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앞에서 좌절(후회, 원망, 무기력, 포기, 무절제, 자기 연민, 알코올)에 자신을 내주는 사람은 반전의 기회가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바닥에서 다시 추스르고,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면서, 숲(나아갈 방향)을 그리는 사람은 위기 속에서 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봄에 핀 붉은 아까시 - 미국 아까시나무를 스페인에서 관상용으로 품종개량한 것이라 한다. 흰꽃보다 조금 더 크고 한 송이에 달린 꽃 수는 적으며 향기도 옅다.


  * 아카시아, 아까시나무?

아카시아는 호주 원산으로 노란 꽃을 피우고 948종이 있다.

아까시나무는 미국 원산으로 흰꽃을 피운다. 붉은 아카시아로 알려진 나무도 원산지가 미국 품종을 스페인에서 개량한 것이니 붉은 아까시나무  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아카시아 속의 나무들은 전 세계에 1300여 종이 있다. 꽃말은 '비밀스러운 사랑'.


  꽃말은 불륜을 말하는 게 아니다. 호주 원주민 총각이 처녀에게 남몰래 고백하는 풍습을 말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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