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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 Oct 26. 2024

전화가 왔다.

시가 너무 좋아서

전화가 왔다.

문학회 선배 문인이다.


"여보세요.  000입니다."

(동인지) "편집하다가 시가 너무 좋아서 연락드렸습니다."


  (그는 문학회 연회지 발간을 앞두고 회원들의 원고를 편집 중이다.)

평소와 달리 밝고 달뜬 목소리다.

내가 알던 그는 진중한 이미지다.


"아 네에."

"좋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시가 정말 좋아요."

"사유를 많이 하셨나 봐요."

"그렇진 않습니다."

"많이 부족한 글을 좋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차분하고 느릿한 말투로 대답했다. 큰 상을 받은 한 모씨처럼. 왜냐면, 있어 보이잖아요. ㅋㅋ 그녀와는 일면식도 없고, 난 머리도 짧고 남잔데. 공통점이라곤 비슷한 연령대(라고 우겨본다.), 아주 가끔 시인이라 불리는 것 정도다.


  내가 상금이 걸린 문학상을 받은 소식도 아니고, 들뜰 이유는 없다. 그래서 차분히 통화할 수 있었다.


  그의 강직한 성품으로 미루어 빈말은 아닐 터(빈말이라도 좋다.), 예기치 않은 이런 전화는 매우 매우 반갑다. 내게 스스로의 희망과 확신의 연료가 바닥이 보일 쯤에는 더더욱 그렇다. 이는 마치 울에서 송사리 몇 마리 잡은 놈이, 고래 잡겠다고 뛰어든 바다에서, 주위를 맴도는 직삼각형 지느러미를 본 심정과 비슷할 것이다. 이런 느낌일 때 밧줄을 던져 주는 이랄까.


  그는 무명이긴 하지만, 국립대 국문학 전공자라고 했으니 적어도 40년 이상 글을 쓴 시인이자 수필가, 평론가이다. 비전공 듣보잡에 늦깎이 글쟁이인 나와는 유전자가 다르다는 뜻이다. 또한 그의 글은 나와 문체나 지향점이 다르다. 그런 그에게 갑작스러운 칭찬을 들었다. 아깝다. 그가 굵직한 문학상 심사위원이었으면, 메이저 출판사 편집장이라도 됐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그의 무명이 진심 안타까웠다(이기주의자! 그의 성공에 기대려 하다니...).


  통화는 최대한 겸손하고 침착하게 했으나, 내심 기쁨의 호르몬인 도파민이 샘물처럼 솟아나고, 방전되었던 에너지가 완충된다. 


  ' 사람에게라도 힘이 되는 글을 쓰자'는 초심이었다. 칭찬 몇 번에(인사치레 한 칭찬인데 진짜인 줄 알고 ) 기왕,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욕심이 생겼다. 글의 밑천이 드러나기 시작한 시점이 아닐까 한다.


  너무 고독하기만 하면 글을 쓰는 힘이 빠지게 된다. 독자가 없는 작가는 스스로에게 글에 대한 반응과 성찰을 제대로 할 수 없을뿐더러 위로와 칭찬이 주는 힘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브런치에 글을 시작하며 많은 작가님들의 라이킷과 소중한 댓글들이 큰 힘이 되었다. 두 달이 넘었다.  '하루 한 편의 글을 쓰자'는 혼자만의 약속을 지금까지 지킬 수 있었던 원천이었다. 브런치의 모든 작가님들에게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흐리고 간간히 실비 내리는 날 실낱 같은 글에 대한 희망을 명주실, 아니 노끈처럼 키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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